“30여 년 정치 여정을 이제 접습니다. 국회가 더 이상 저로 인해 비난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13일 오후 4시 국회 본회의장.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기춘(3선·무소속) 의원은 표결 전 신상발언을 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본회의장에서 발언할 기회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한 뒤 “남양주에 탯줄을 묻고 어린 시절 그곳에서 뛰어놀다 3선 국회의원까지 됐다”며 눈물을 보였다. 발언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뒤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자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3선·서울 서대문을)이 박 의원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
심정적으로 동정했지만 여론 의식
문재인 “소주 한잔해야 잠 올 듯”
의원들은 심정적으론 박 의원을 동정했지만, 지난해 송광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직후 일었던 여론의 후폭풍을 의식한 듯 가결 쪽을 택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본회의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온정보다 원칙을 택했다. 인간적으로 고통스러운 선택이었고, 박 의원에게 미안하다”며 “오늘은 소주 한잔해야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었다. 본회의 직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이미 정치 생명이 끝났는데 최소한 구속이라도 면하게 해 항변할 기회를 주자”(이춘석), “영장 자체가 위법이다. 법을 어긴 행정부에 대해 국회가 부결로 반대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박주선)는 등의 동정론이 있었다. 평소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표결 직전 박 의원을 만나 말없이 안아주기도 했다.
박 의원은 별도의 입장 발표 없이 17일 예정된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재판부가 박 의원의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에 대한 판단 여부에 따라 구속이 결정된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일 정치자금법 위반 및 증거은닉 교사 혐의로 박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11년부터 지난 2월까지 분양대행업체 I사 김모(44) 대표로부터 현금과 명품 시계 등 3억5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다. 또 측근 정모(50)씨를 통해 김 대표로부터 받은 명품 시계 7개와 명품 가방 2개, 현금 2억원 등을 돌려주려 했다고 보고 증거은닉 교사 혐의도 적용했다.
글=이지상·위문희 기자 ground@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