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12일 일본 법무성에서 12개 L투자회사에 대한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분석한 결과 신 총괄회장이 L4·L5·L6를 제외한 9곳의 대표이사에서 해임됐다. 해임일자는 지난달 31일이고 등재일자는 지난 10일이다. 신 총괄회장이 해임된 L투자사에서는 신동빈 회장만 대표이사로 등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 회장은 6월 30일 대표이사에 오른 이후 한 달간 아버지와 공동대표로 있다가 단독 대표로 홀로서기를 굳힌 것이다.
아버지 24년 보필 비서실장도 교체
그 자리에 측근 이일민 전무 앉혀
한·일 롯데서 신동빈 체제 굳히기
신동주, 쓸 수 있는 카드 많지 않아
아버지 통해 타협안 조율할 수도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이번 롯데 사태 과정에서 아버지 곁에 신동주만 있고 신동빈은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대로 둘 수만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 회장은 형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와 다른 가족 간 접촉을 막아선 안 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아버지의 권위를 가급적 침범하지 않는 대신 ‘롯데호텔 34층=반(反)신동빈 세력 집결지’ 구도를 깰 해법으로 이번 비서실장 인사를 단행했다는 얘기다.
동생에 비해 신동주 전 부회장은 활로를 못 찾고 있다. 지난 11일 밤 신 전 부회장이 급거 귀국한 것도 L투자회사 대부분의 대표이사직에서 아버지가 해임된 사실을 보고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신 전 부회장은 귀국 후 잠시 서울 성북동 자택에 들른 뒤 12일 새벽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 겸 숙소인 롯데호텔 34층으로 들어가 머물고 있다.
그간 신 전 부회장의 언행으로 봤을 때 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의 안건을 무력화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반신동빈 세력’ 결집과 ‘소송’이라는 대응카드가 그것이다. 특히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 주총의 성격을 경영권 분쟁에 대한 표 대결이 아니라 그룹 개혁안 승인 절차로 규정한 상황에서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호텔롯데의 기업공개 안건을 막아야만 그 다음 카드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앞서 신격호 부자와 일본행에 동행했던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이 사의를 표하며 ‘중립선언’을 했고 신 총괄회장 곁을 지키던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도 롯데호텔을 떠나 있는 상태다.
결국 신 전 부회장의 마지막 카드는 아버지 신 총괄회장뿐이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해 달라고 설득하거나 신동빈 회장과의 타협안을 조율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은 이미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 그는 최근 일본 법무성에 신동빈 회장이 L투자회사 12곳의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법적으로 부당하다며 등기 변경 신청을 낸 상태다. 이와 관련, 롯데 관계자는 “이번 사태 전후로 이뤄진 신동빈 회장의 행보는 모두 이사회 의결 등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들”이라며 “신 전 부회장 측이 소송을 한다 해도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