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묻지마 폐업’은 아니었다. 재기 전략을 철저히 따져 봤다. 다행히 중고업자들이 ‘땡처리’ 수준으로 가져가는 미용도구도 제값을 받았다. 고 대표가 업체를 연결해 준 덕이었다. 주씨는 “2호점을 폐업한 뒤 다시 재창업해 가발 판매 등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고경수 ‘폐업 119’ 대표
설비 제값 받아 주고 행정 처리 지원
작년 가을 이후 500여 곳 도와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묻지마 폐업’이 많다는 점이다. 적당히 상가 권리금을 받거나 설비를 ‘떨이’처럼 넘긴 뒤 철수하는 자영업자가 적잖다. 업자는 물론 경제에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급하게 이뤄지는 자영업자 폐업이 가족 해체와 극빈층 전락으로 이어진다”며 “폐업의 피해를 줄이는 전문 서비스업 발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의 ‘폐업 119’도 이런 필요성에서 탄생했다. 창업을 지원하는 곳은 많아도 문 닫는 걸 돕는 업체는 찾기 힘들다. 고씨 이력서에도 ‘실패담’이 가득하다. 무역회사를 2년간 다니던 그는 건강식품 만드는 업체를 차렸지만 재미를 못 봤다. 그는 “이후 화훼·인테리어 등에도 손댔지만 결과는 같았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잘 실패하는 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지난해 가을 ‘폐업 119’를 만들고 500여 곳의 폐업과 재기를 도운 이유다. 고 대표는 “폐업 직전 단계에서 전문가들이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보조할 경우 큰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폐업자 입장에서 돕는 곳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폐업 119’의 경우 30만~50만원의 자문 수수료를 받지만 ‘재창업 여력’이 없을 경우 공짜로 도움을 준다.
정부도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긴 하다. 중소기업청·고용노동부는 자영업자 전직을 지원하는 ‘희망 리턴 패키지’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중기청은 지난달부터 전직 지원금을 최대 60만원에서 75만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의류를 판매하는 박모(45)씨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잘 모른다”며 “전직 지원금을 몇 만원 올린다고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폐업 119’ 같은 곳을 찾는 이유다. 고 대표는 "폐업을 잘해야 재기도 쉽다”며 “폐업 지원이 곧 창업 지원”이라고 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창업 생태계’에서 설립·영업 등과 함께 ‘퇴출 전략’도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실패를 성공을 위한 경험으로 여기는 인식이 적다”며 “폐업 공포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경영 진단과 함께 재기자금 지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임지수 기자 yim.jiso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