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불꽃 같은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 겨울 “김성근 감독을 모셔오자”는 이글스 팬들의 요구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받아들인 게 불꽃의 시작이었다. 지난 6년 동안 5차례나 최하위에 그친 한화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미디어의 관심을 독점했다. 김 감독은 “꼴찌가 놀 시간이 어딨어?” 라는 취임일성으로 팀 재건을 시작했고,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지옥 훈련’을 지휘했다. 패배의식에 빠져 있던 한화 선수들과 팬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 부임 후 만년 꼴찌 탈피
포기 모르는 악착 승부에 팬들 환호
그룹 전체 이미지 개선 효과도 얻어
구단, 과감한 투자로 선순환 이뤄져
양키스 투수, 3개월에 8억 주고 영입
TV 시청률 상위권도 한화가 싹쓸이 중이다. 6월 초까지 프로야구 시청률 상위 13개 경기 가운데 11개가 한화 경기였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한화 경기를 보는 접속자수는 평균 10만 명에 이른다. 뉴스 생산량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팬들의 참여도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단연 1위다. 김 감독은 “경기장에 오는 관중뿐 아니라 TV와 인터넷을 통해 한화 경기를 보는 팬들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어깨가 무겁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한 경기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전년도 최하위 팀이 이렇게 뜨거운 인기몰이를 한 적이 없었다. 선두 경쟁은 수년째 비슷하게 진행 중인 반면 한화가 최하위에서 탈출하며 전체 판세를 뒤흔들고 있다. 이영훈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포츠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상품 가치가 올라간다. 순위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전력 평준화가 그래서 중요하다”며 “시즌 초에는 김성근 감독의 인기가 흥행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한화의 인기로 확장됐다. 드라마 같은 승부가 이어지면서 한화 야구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팬들에게 야구의 재미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화는 올 시즌 12차례 끝내기 승부(6승6패)를 펼쳤다.
1990년대까지 프로야구는 모그룹 홍보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이들이 글로벌 기업이 된 2000년대에는 홍보에 대한 기대수준이 낮아졌다. 대신 각 구단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럼에도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모기업의 소유구조 아래에 있다. 야구팬뿐 아니라 모그룹의 소비자에게까지 만족감을 주는 게 현실적인 존재 이유다. 지난 2013년 9월 한국체육학회지에 실린 논문 ‘국내 프로야구단의 가치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정영재·김수잔)’에 따르면 한국 프로야구 가치 평가의 첫째 요소가 홍보였다. 야구단을 통한 홍보가 다른 요소(수입·성적·인프라 순)를 앞섰다. 구단이 야구장을 소유할 수 없고, 중계권료가 구단에 배분되지 않는 한국 프로야구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2015년 한화 이글스는 야구단이 그룹 내부의 결속력과 충성도를 높이고, 대외 이미지 강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단기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야구단의 가치는 계속 올라갈 수 있다. 2015년 우승팀은 11월에 결정되겠지만 최고의 성과를 올린 구단은 이미 정해진 것 같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