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은 나의 것,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거다. 유승민 사태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국민 정서와는 약간 어긋난 걸 눈치챘음에도 그냥 밀고 나간 건 뚝심이었다. 차떼기 화풍(貨風)으로 붕괴 직전에 몰린 한나라당을 되살린 것도 그런 믿음이었던 거다. 천막당사가 일종의 정치쇼라고 해도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회생불가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던 거다. 세상 사람들이 갸우뚱하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건 신념 없이는 될 일이 아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했던 중화학공업화가 그랬다. 당시 정황으로 미뤄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대통령은 6대 전략산업을 지정했고, 대기업을 책임자로 앉혔다. 조선·철강·자동차·반도체·석유화학·비철금속 등 6개 산업단지가 속속 조성되었고 가동에 들어갔다. 선진국이 코웃음을 쳤다. 저게 될까? 사실 70년대 중화학공업화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중동의 건설 달러로 버텼다. 최고경영자들이 공장 건설과 수주 경쟁에 올인한 결과 정주영 신화 같은 기적 스토리를 탄생시켰다. 6개 전략산업을 맡은 대기업은 이제 어엿한 재벌로 성장했고 그 주변에 협력·연관 산업이 번성하는 한국 경제의 기본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국가·기업인·노동자의 눈물겨운 합작품이었다.
국가가 보증한 외국 차관이 주효했다. 세계은행(IBRD)에서 빌려온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여기에 쏟아부었다. 빚보증과 목표 설정은 정부가 했고, 국민은 세금과 허리띠 졸라매기로 답했다. 정부는 설비재 수입을 위해 10년간 환율을 700원대로 묶었는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경공업 중심의 수출산업이 망가졌고, 국민은 배로 뛴 물가를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올라선 중화학공업을 디딤돌로 당시 대기업은 굴지의 재벌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전한 창조경제 연석회의는 ‘70년대 진 빚을 갚으라’는 얘기다. 박정희의 딸에게 갚지 말고 청년세대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갚으라는 얘기였다. 창조경제를 발판으로 ‘미래의 한국’을 일궈달라는 간곡한 호소다.
정권이 바뀌면 어찌 될지 뻔히 보인다고? 늘 그래 왔고, 그럴지 모른다. 정권이 지면 대통령의 사업도 빛이 바래는 게 한국의 풍경이었다. 혁신 클러스터나 녹색성장이 다 그랬지만 언제까지 한국 경제와 국민을 그런 정치적 흥행에 가둘 건가를 반성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제2의 산업화’ 디딤돌이 될 지역창조센터는 더러는 비어 있고 더러는 활력을 만들고 있다. 말마따나 ‘혁신의 원자로’가 되면 얼마나 좋으랴. 전경련은 창조경제를 포함, 신성장동력 발굴에 향후 3년간 13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스라엘·독일·덴마크의 성공모델처럼 한국이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올라서려면 정부·기업·민간의 눈물겨운 올인(all-in)이 필요하다. 창조경제를 본궤도에 올리는 데 해결할 일이 산더미지만 한번 도전해봄 직하지 않은가? 재능 있는 청년, 경륜 있는 퇴직자들이 한숨만 쉬는 풍경을 정치 탓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만든 스마트폰 신화를 각 영역에 확산시키는 일은 이제 너와 나의 몫이다. 뚝심은 나의 것, 대통령의 뚝심에 조금 감전되어도 좋을 듯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