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정치권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국정에 반영하지 못하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극한 대립과 갈등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불신은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되어 온 탓에 그 뿌리가 매우 깊다. 그런데 사실 대의민주주의는 이런 정치적 불신과 불만을 교정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정치인이 일을 잘하고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하면, 상(償)으로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렇지 못하면 벌(罰)로 낙선시키는 것이다. 즉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성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정당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치 세력은 약화시키거나 도태시켜 버리고, 일 잘하고 유능한 정당은 정치적으로 키워 내는 것이다. 기업 간의 시장 경쟁처럼 선거 경쟁을 통해 정치권의 자기 혁신을 도모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현재와 같은 지역구 중심의 선거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의 진입은 쉽지 않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역주의라는 견고한 성을 쌓아두었으며, 정치자금의 배분이나 지역 조직의 측면에서도 단단한 기반을 확립해 두었다. 대중적 인지도의 측면에서도 소수 정당이나 신생 정당보다 훨씬 유리하다. 이런 조건하에서 신생 정당의 후보들이 지역구 선거에서 거대 정당 후보를 누르고 국회 내에 정치세력화를 이루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이 배정되기 때문에 충분한 의석수만 확보된다면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현재 54석에 불과한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려야만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정수 300석을 그대로 두고 비례의석을 늘리려면 그만큼의 지역구 의석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지역구 의석을 자발적으로 줄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 남은 방법은 의원 정수를 늘려서 그만큼 비례의석으로 배정하는 것이다. 지역구 의석 246석의 절반 정도를 비례 의석으로 둔다면 123석이 되므로 전체 의원 정수는 369석이 될 것이다. 지금보다 의원 수가 60~70석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과 이를 통한 양당 정치의 극한 대립 혹은 야합으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그만큼의 ‘특권층’을 더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냐는 정서적 거부감이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을 그대로 두는 것은 지역주의 정당들이 독과점적 특권을 계속 유지하도록 방조하는 일이다. 감정적 격정보다 차분한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