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으로 경영권이 나뉘어 있는 롯데그룹이 신동빈 회장의 ‘원 톱’ 체제로 가닥을 잡았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신 회장이 일본 ‘경영권 공백’을 빠르게 채워 가는 모양새다.
일본 경영진 눈에 띄게 깍듯
신격호 회장 의중 전달된 듯
지난달 도쿄 기업설명회 주도
재계에서는 이 같은 일본 롯데의 스탠스 변화가 신격호(94) 총괄회장의 의중이 전달됐기 때문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올 초까지만 해도 일본롯데 경영에 대해 “저는 잘 모릅니다”로 말을 아꼈던 신동빈 회장 역시 최근 내부적으로 “(일본롯데도) 잘돼야 한다”고 하는 등 관심과 책임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달 18일 일본 도쿄에서 노무라와 미쓰비시 등 증권·금융사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업설명회를 주도하고 “국내외 경기 침체로 어려운 환경이지만 롯데의 사업영역은 멈추지 않고 확장될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롯데를 구분 짓지 않았다. 앞서 2일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났다. 롯데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롯데가 한국과 일본에서 사업하는 기업인 만큼 한·일 양국 간 경제 협력의 가교 역할에 대한 주문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그룹 ‘원 톱’으로서 신동빈 회장의 움직임은 최근 호텔롯데를 둘러싼 행보에서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호텔롯데는 한국롯데의 실질적 지주사이자 일본롯데와 한국롯데를 잇는 핵심 계열사다. 호텔롯데의 최대 주주는 지분 47%를 보유한 일본롯데홀딩스다. 재계에서 지난 3월 신 회장의 호텔롯데 등기이사 선임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로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신 회장은 이후 2개월 만인 5월 말 뉴욕팰리스호텔을 1조원을 들여 사들이는 대형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신 회장은 올해 그룹 사상 최대 규모인 7조5000억원의 실탄을 M&A에 쏟아붓겠다고 밝히고 KT렌탈 인수(3월) 등 공격적인 승부사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원 톱 체제에 자신감을 얻은 신 회장은 글로벌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달 23일 전 세계 650여 개 소비재 제조사 및 유통사가 참여하는 ‘세계소비재포럼’ 참석차 미국 뉴욕으로 출국했다. 도쿄에서 돌아온지 이틀 만이다. 뉴욕에서는 다음달 인수를 마무리 짓는 뉴욕팰리스호텔에서 묵으며 인수 후 활용방안을 논의한 뒤 지난달 30일 귀국했다. 상반기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다. 롯데 관계자는 “ 신 회장이 불안한 해외 시장을 면밀히 파악하고 글로벌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행보”라고 설명했다.
글=심재우·이소아 기자 jwshim@joongang.co.kr
일러스트=박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