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도입된 고용보험이 1일로 20주년을 맞았다. 처음 시행될 때만 해도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호황기에 여기저기 돈이 넘쳐날 때였다. 하지만 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쳤다. 그리스처럼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 경제는 급전직하했고, 공장은 속속 문을 닫았다.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8.6%까지 치솟았다. 고용보험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97년 5만여 명에 불과하던 실업급여 수급자가 이듬해 80여 만명으로 불어났다. 어려운 사업장이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으면 임금을 지원해주는 고용조정지원제를 통해 실직 위기에 몰린 47만1141명이 직장을 지켰다. 58만8006명은 재취업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2년 뒤인 2000년 실업률은 4.1%로 떨어지며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실직자 직업훈련해 일자리 알선
캐나다·일본·대만서도 배워가
“비슷한 위기 겪는 그리스와 달리
한국은 적극적 정책 펴 위기 탈출”
두 번의 경제위기에도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생활안정 정책이 큰 효과를 발휘하자 국제사회도 놀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위기를 겪는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한국은 고용보험을 기반으로 한 고용정책을 내실있게 수립, 집행해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실업급여만 운영하던 캐나다는 한국의 고용보험을 벤치마킹해 직업훈련과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고용보험제도로 전환했다. 일본도 뒤따랐다. 대만,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도 한국의 고용보험을 자국에 이식했다.
이런 한국 고용보험의 역할은 98년 외환위기 같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의 그리스와 비교된다. 그리스는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직업훈련을 하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없다. 실직하면 국가가 먹여살리는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일 하르츠 개혁을 주도한 귄터 슈미트 베를린 자유대학 명예교수는 “비슷한 모양새의 경제위기를 겪은 한국과 그리스의 가장 큰 차이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를 만들고, 알선하는 적극적 정책이 없다 보니 일자리가 생길 리 없고, 일자리가 없는데 경제를 회복시킬 길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전사를 얼마나 보호하고 키워내느냐가 경제위기 극복의 명암을 갈랐다는 얘기다.
현재 고용보험 기금은 정부의 전체 일자리 사업 예산 14조원 중 66%인 9조2000억원을 담당하고 있다. 일자리 정책의 근간이다. 청년들의 해외취업이나 사회적 기업, 벤처 창업도 지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노사단체 대표와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용보험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고용보험의 역할을 강화해 노동시장의 틀을 바꾸고 미래세대의 희망을 키우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유길상 한국고용정보원장이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유 원장은 한국노동연구원 재직시절 ‘고용보험’이란 용어를 창안하고 제도를 설계해 ‘고용보험의 아버지’로 불린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