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지를 가다 - 십자가 성 요한과 산티아고
톨레도에 다녀온 다음 날인 8일, 역시 마드리드에서 멀지 않은 아빌라의 엔카르나시온 수녀원을 찾았다. 데레사 수녀의 요청으로 성 요한은 5년간 이곳의 영적 지도 신부로 활동했다. 450년 전 수녀원은 이제 작은 박물관이 되어 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성 요한이 직접 그린 그림이 전시 중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보기 드문 앵글이다. 그는 자신의 눈을 내려놓고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길 늘 갈구했다. 어쩌면 이 그림도 그런 ‘눈’으로 본 것일까. “집착을 내려놓아라!” 그는 눈에 보이는 사물과 느껴지는 감각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물욕에 대한 맛을 끊는 것은 어둠 속에 있는 것이며, 비어있는 것이라 했다. 그런 공허 속으로 하느님이 찬다고 했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사물과 세상을 “집착 없이 이용하지 않는 듯이 이용하라”고 했다. 그건 붓다가 『금강경』에서 설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主 而生其心)”는 가르침과도 정확하게 맥이 통한다.
아빌라의 거리를 걸었다. 바람이 분다. 성 요한의 메시지가 울렸다. “자신을 찾기 위해 묵상 기도를 하지 말라. 자신을 떠나기 위해 묵상 기도를 하라.” 자신을 떠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자신을 향해 발을 떼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향했다.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9일 한국인 순례객을 만났다. 34일에 걸쳐 매일 28~32㎞씩 걸으며 땅끝까지 종주했다는 최철순(60)씨는 순례 여정에서 마주친 문장 하나를 꺼냈다. “삶이란 각자가 살아내야 할 신비이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야고보 성인의 무덤 앞에서 눈을 감았다. 한순간이라도 있었던가.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그걸 신비로 대하며 산 적 있었던가. 우리는 늘 싸워야 할 대상, 뚫고 나가야 할 대상, 버텨내야 할 대상으로 삶을 바라보았으니까.
중간에 버스를 내렸다.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코스를 4㎞쯤 걸었다. 풀 내음, 농가에서 풍기는 거름 냄새가 엉켜 더없이 풋풋했다. 동서양 막론하고 영성가들은 입모아 말했다. 삶이 신비라고. 중국의 운문 선사는 그걸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 표현했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는 “냄비 속에도 주님께서 현존해 계신다”고 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물었다. ‘대체 그 신비가 어디에 있을까?’ 주위를 둘러봤다. 길가에 선 나무, 이국적 색채의 꽃들, 마차가 달렸던 옛길, 농가의 돌담, 귓가를 스치는 바람. 그 모두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었다. 바쁘다며, 괴롭다며, 귀찮다며 말이다. 결국 어딘가 달라붙어 있는 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자연의 음성, 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까. ‘삶은 맛봐야 할 신비이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순례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을 쿵! 쿵! 때렸다.
아빌라·산티아고(스페인)=글·사진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