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한국시간) 캐나다 오타와 랜즈다운 경기장. 추가시간이 주어진 후반 48분. 스페인이 아크 정면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골키퍼 김정미(31·현대제철)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14일 코스타리카전에서 마지막 1분을 남기고 동점골을 허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스페인 선수가 찬 공은 골키퍼 김정미가 손을 뻗은 바로 위, 크로스바를 맞고 퉁겨나갔다. 그리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한국이 여자월드컵에서 사상 첫 승과 함께 16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스페인을 2-1로 꺾은 한국은 캐나다 여자월드컵 E조 2위(1승1무1패)로 16강에 진출했다.
전반 스페인 선제골에 흔들렸지만 조소현·김수연 연속골로 역전승
몸 날려가며 두 차례 수퍼세이브 … 31세 맏언니 김정미 숨은 주인공
윤덕여(54) 감독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경기였다. 선수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16강을 확정지은 뒤 펑펑 울었다. 김정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울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뒤를 지나가던 김범수 골키퍼코치는 빨개진 눈으로 김정미에게 ‘수고했다’는 눈인사를 했다.
하지만 김정미는 이번 대회 조별리그 세이브율 44.4%로 골키퍼 30명 중 26위다. 실점할 때마다 자기 책임인 것 같았고,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 때 힘을 준 건 월드컵에 처음 나왔는데도 떨지 않고 씩씩하게 뛰는 동생들이었다. 김정미는 “보여준 게 없어서 참 속상했다. 그런데 동생들이 힘내서 열심히 뛰고 득점도 해주니 힘이 났다”고 말했다.
김정미는 스페인전에서 혹독한 훈련의 결과를 보여줬다. 전반 29분 베로니카 보케테에게 선취골을 내줬지만, 전반 32분 나탈리아 파블로스의 강력한 슈팅을 쳐냈다. 목청이 터져라 “앞으로 가” “옆에 비었잖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당당해진 맏언니 모습에 동생들도 골 행진을 시작했다. 후반 9분 강유미(24·KSPO)가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올리자 조소현(27·현대제철)이 솟구쳐 올라 헤딩 동점골을 터뜨렸다. 김정미는 후반 19분 결정적 슈팅을 막아내 역전 발판을 마련했다. 교체로 들어간 김수연(26·화천 KSPO)이 후반 33분 오른쪽 측면에서 길게 크로스를 올렸다. 유영아(27·현대제철)를 보고 올린 크로스였는데 공이 스페인 골키퍼의 머리를 넘어가면서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들었다. 2-1 역전. 김정미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윤 감독은 “김정미는 월드컵을 경험한 베테랑이자 대표팀 맏언니로서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면서 “남은 경기에서는 앞으로 나와서 자신있게 볼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타와=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