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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힘내라! 동아시아문학포럼

중앙일보

입력 2015.06.17 00:17

수정 2015.06.1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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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지난 15일 칭다오(靑島)로 장소를 옮겨 열리고 있는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문학포럼을 취재 중이다. 12일 베이징에서 개막한 포럼은 2008년 한국대회, 2010년 일본대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세 나라의 갈등과 오해 해소에 문학이 뭔가 기여하자는 뜻에서 시작됐다.

 각 나라의 유명 문인이 11명씩 모인 흔치 않은 행사에서 눈에 띈 건 세 나라의 ‘다름’이다.

 가령 일본 문인들은 개인주의적이다. 베이징행 비행기 좌석을 배정받을 때 서로 떨어진 자리를 얻으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따로따로 흩어져 이동하다 보니 베이징 공항에서 인원파악이 힘들었다는 과장 섞인 농담도 나온다.

 중국은 역시 ‘스케일’이 느껴진다. 참가 작가 소개 책자에 작품 분량이 ‘○○자(字)’라고 밝힌 작가가 많다. 산둥성 작가협회 주석인 소설가 장웨이(張<7152>·59)의 경우 ‘1975년부터 지금까지 1300만 자를 썼다’고 했다. 200자 원고지로 1000쪽 분량인 한국 장편소설의 글자 수는 20만 자다. 한문 문장을 한글로 옮기면 글자 수가 1.7∼1.8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1300만 자는 한국의 장편소설 110권이 넘는 분량이다. 포럼 조직위원인 한국외국어대 박재우 교수는 “문학성도 따지지만 전체 작품의 분량을 특히 중시하는 중국 특유의 문화가 밴 작가소개 습관”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성향만큼이나 다른 게 세 나라의 포럼 개최 방식이다.

 일본은 별도 조직 없이 포럼 취지에 공감한 작가들이 일종의 동호회 형태로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참가 비용을 충당하는 경우가 생긴다.

 중국은 일사불란하다. 포럼을 주최한 중국작가협회의 주석 자리는 장관급이다. 하려는 의지가 문제지 마음만 먹으면 풍족한 정부 예산을 투입해 대회를 뚝딱 치르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두 나라에 비하면 한국은 딱 중간쯤이다. 작가들은 뭉칠 때는 뭉치면서도 개인주의적이다. 중국 같지는 않지만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 다시 한국에 순서가 돌아오는 4회 포럼 개최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달라도 너무 다른 세 나라를 보면 얼핏 포럼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게다가 문학은 역사나 영토 분쟁 등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을 능력이 없다. 폄하하면 포럼은 기껏해야 세 나라 유력 문인들의 친교 모임일 뿐이다. 왜 굳이 열어야 하는 걸까.

 일본 측 단장인 소설가 시마다 마사히코(54)는 “역사상 최악”이라며 아베 총리의 우경화 정책을 비판했다. 포럼에 참가한 다른 일본 작가들도 생각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 발언에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포럼을 통해 일본 작가의 속내를 한국과 중국 작가들이 접하게 되고, 언론 보도를 통해 세 나라 독자들이 알게 된다. 작가는 단순한 자연인이 아니다. 작품에 공감한 이들은 작가의 발언에도 영향을 받는다. 최소한 그런 점에서 이번 포럼은 밥값을 했다.

칭다오에서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