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이 미국 의회 증언에서 박정희 정권의 부도덕성과 독재성을 규탄한 핵심 아이템은 유신체제(72년)와 김대중 납치사건(73년)이었다. 유신과 납치 같은 70년대 대형 사건들은 김형욱이 현직에 있을 때 경험한 일이 아니다. 그가 실각이나 미국 도피 중인 상태에서 과거 중앙정보부 부하직원 등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구성했다. 전모 파악이나 정확성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형욱은 외부 취재를 통해 김대중 납치의 지시자를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JP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납치사건 지시자로 이후락을 지목했다.
『김형욱 회고록』 허점과 오류
“3선 개헌, 내가 JP 설득” 주장
JP “그런 얘기할 위치 안 돼”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김형욱은 회고록에서 “모택동 노선과 일치하고, 교육은 공산당식 밀봉교육이었다”며 JP의 좌익성을 암시했다. JP는 이를 부인했다. 공화당 사전교육에 참여했다 나중에 민주화투쟁을 한 예춘호 전 의원도 “사전교육은 윤천주·김성희 교수 등과 세미나 형태로 운영됐다.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차단하는 밀봉교육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69년 3선 개헌 작업 때 김형욱 정보부장은 공화당의장인 JP에게 “끝까지 반대하면 박 대통령이 제2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박정희 후계자는 당신 아니냐. 그러니 3선 개헌을 찬성하라”라며 설득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JP는 “김형욱이 나한테 무엇을 설득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고 일축했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