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법률 하극상 비일비재 … 정부 시행령 다 검토할 것”

중앙일보

입력 2015.06.02 02:30

수정 2015.06.02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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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오른쪽)가 1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시사하자 “대통령의 태도가 좀 심하다”고 말했다. 이날 당무위원·국회의원 회의에 참석한 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김성룡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즉각 ‘입법부에 대한 전쟁 선포’로 규정했다.

 당 최고위원회의 후 김영록 수석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을 통해서다. 김 수석대변인은 “사실상 삼권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삼권분립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며 “행정입법(대통령령 등)의 체계 내에서 시정토록 하는 기회를 주는 국회법 개정안에 ‘삼권분립 위배’라는 오명을 씌우려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특별법 등 그간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 중 상위법과 충돌하거나 위반하는 사례 14건을 발표했다. <표 참조>

청 거부권 시사에 ‘전쟁 선포’ 규정
새정치련, 상위법 충돌 14건 발표
서청원 “칼 빼든 야당, 가관이다”
총리 청문회 ‘채동욱 참고인’ 합의
“불편한 당·청 관계 반영” 관측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야당 간사인 김태년 의원은 회견에서 “대한민국은 ‘시행령 공화국’이란 말이 있다”며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상위법령인 법률을 배반하는 이른바 ‘법령 하극상’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의 경우 정부가 유아교육법·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는 없는 내용을 시행령에 넣어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을 떠넘기고 있다”고 예를 들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청와대의 입장 발표에도 아랑곳없이 “6월 임시국회에서 정부 시행령 전반을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새정치연합의 시행령 위반사례 조사 발표에 대해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공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3~4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야당은 현재 시행 중인 시행령을 모두 손보겠다고 칼을 빼 들었다”며 “가관이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야당은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국회가 위법적인 시행령을 고치라고 요구하면 정부가 강제로 따라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여야가 합의한 입법취지는 강제력을 부여한다는 데 있는 것은 명백하다”고 못 박았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이 청와대와 야당의 정면 충돌 양상으로 번지면서 1일 시작된 6월 국회는 전장(戰場)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장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부터 양측이 강 대 강으로 충돌할 전망이다.

여야는 이날 황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8~10일 개최하기로 하고, 증인 5명과 참고인 17명 등 총 22인의 출석을 요구하는 데 합의했다. 야당이 요구한 10명의 참고인에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포함됐다. 황 후보자는 법무장관으로 있으면서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 과정에서 채 전 총장과 갈등을 빚어 야당이 공세를 벼르고 있다. 새누리당이 이례적으로 3일간의 청문회에 합의하고 채 전 총장 등의 참고인 채택에 응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최근의 불편한 당·청 관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법안 통과를 신신당부하고 있는 ‘경제활성화법안’ 처리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날 문재인 대표는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6월 국회의 전부일 수는 없다. 많은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민생국회”라고 했지만 야권 내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을 경우 그의 말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글=이지상·김경희 기자 ground@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