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가지 차량이 한 라인서 나오네요

중앙일보

입력 2015.06.02 00:32

수정 2015.06.02 00:32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직원이 지난달 28일 조립라인에서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이 회사는 SM3·SM5·QM5와 닛산 ‘로그’를 비롯한 6개 차종을 한 라인에서 조립하며, 수요에 따라 계획적·탄력적으로 생산할 수도 있다. AGV(무인운반차)가 작업자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부품을 운반한다. [사진 르노삼성차]

20년 전인 1995년 4월 첫 삽을 뜬 르노삼성차(옛 삼성차) 부산 신호동 공장은 “초일류 제품은 초일류 시설에서 나온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념에서 탄생했다. 이 회장은 1년여 뒤인 96년 11월 완공한 공장을 방문해 “차 한 대가 고장나도 전 종업원이 깜짝 놀라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며 품질을 강조했다. 반도체 공장처럼 대부분 공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다른 자동차 공장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부산 공장에서는 기계가 대신했다. 그래서일까. 법정관리(99년)-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인수(2000년)를 거쳐 2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이 공장에서는 ‘품질 제일주의’ 분위기가 그대로다.

 지난달 28일 방문한 부산 공장 조립라인에서 눈에 띈 것은 통로에 그려진 회색 줄을 따라 움직이는 AGV(Auto Guide Vehicle·무인운반차)였다. 작업자들은 AGV가 운반한 박스 안의 부품으로 조립 작업을 한다. 한 박스에는 차량 한 대에 필요한 부품만 담았다. 이 회사의 부품 자동공급 비율은 70%다.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가보니 …
SM3 → SM5 → QM5 → 닛산 로그 ?
여러 모델 오는 순서대로 조립
수요에 따라 탄력적 생산 장점
품질제일주의 내세워 부활 노래

 이해진 상무는 “모든 부품을 라인에 깔아놓으면 시간·인력을 낭비하지만 AGV에서 부품을 꺼내 쓰면 작업자가 해당 부품이 맞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오류를 줄이는 것은 물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 덕분에 부산공장에서는 9km에 이르는 조립라인에서 6개 차종을 섞어서(혼류) 생산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드문 사례다. 이날도 SM3→SM5→QM5→닛산 로그→SM3 전기차→SM7이 한 조립라인에서 움직였다. 작업자들은 각자 위치에서 다가온 모델에 맞춰 부품을 조립하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95년 입사한 조형태 생산과장은 “작업자 입장에서는 귀찮고 힘들지만 6개 모델을 혼류 생산하는 게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 상무는 “한 라인에서 한 차종만 만들면 많이 팔리는 차종 라인은 바쁘고, 덜 팔리는 차종 라인은 한가하다. 하지만 한 라인에서 모든 모델을 만들면 수요에 따라 계획적·탄력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립라인 근로자간 갈등이 사라진 것도 이 시스템의 장점이다.

 이런 품질 제일주의는 르노삼성차가 부활하는 원동력이다. 2010년 27만1479대에서 2013년 13만1010대까지 추락한 판매대수를 지난해 16만9854대로 끌어올렸다. 올 5월까지 판매도 전년 동기 대비 87% 상승했다. 2011·2012년 내리 적자를 내다 2013년(445억)과 지난해(1475억) 흑자로 돌아섰다. 3년 전 800여명의 근로자를 명예퇴직시켰을 정도로 위기에 몰렸던 데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실적 상승을 이끈 건 지난해 8월부터 위탁 생산한 로그다. 부산공장은 2019년까지 로그 40만대를 만들어 북미로 수출한다. 모회사인 르노는 전 세계 44개 공장 중 품질·생산성이 높은 곳에 생산 물량을 배정한다. 지난해 내수 시장에서만 1만8000여대를 판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3는 전량 스페인 공장에서 생산한다. 부산공장은 그룹 내 품질 경쟁력이 3위인 점을 인정받아 로그 물량을 따냈다. 이 상무는 “부산 공장이 경쟁력을 잃으면 언제든 로그 생산 물량을 다른 나라에 빼앗길 수 있다”며 “우리의 경쟁사는 현대기아차가 아니라 르노그룹 내 전 세계 공장”이라고 말했다.

 직원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지난해 10월부터 잔업·특근을 하면서다. 올 초에는 250%의 상여금도 받았다. 이 상무는 “그 동안은 직원들도 위기인 줄만 알았지 어떻게 극복할지 몰랐다. 이제는 직원들도 어떡해야 살아날지 안다. 오로지 ‘퀄리티(quality)’다”고 말했다.

부산=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