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면허증 사진만으로 피의자지목 아동추행 사건 무죄

중앙일보

입력 2015.06.01 11:51

수정 2015.06.0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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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여중생 집 앞에 따라가 자신의 바지 속 성기를 만지며 성희롱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부실한 범인식별절차를 거친데다 피해자가 증언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피해자 법정 증언없이 경찰서 진술로만 유무죄 판단 못해"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32)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A씨는 2013년 7월 당시 15세였던 중학생 B양의 집 앞까지 따라간 뒤 B양 집 앞에서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성기를 만지며 ”너희 집 알았으니 다음에 또 보자“라고 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A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사건 발생 2개월 뒤 경찰 조사가 시작됐고 담당 경찰관이 B양에게 A씨의 운전면허증 사진만을 제시해 범인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통상 범인식별절차는 피해자에게 인상착의가 유사한 여러 명을 동시에 대면시키거나 사진을 보여준 뒤 한 명을 지목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더구나 피해자 B양은 4번의 증인소환장을 송달받고도 시험준비나 학업 불안감 등을 이유로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1심 법원은 “피해자의 나이와 피해 내용 등을 고려할 때 법정 진술을 위해 구인절차까지 거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형사소송법 상 예외규정으로 경찰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A씨에게 징역 6월을 선고했다. 법상 진술조서는 작성자가 법정에서 자신이 작성했다고 진술해야만 증거로 사용할 수 있지만 사망이나 질병,소재불명 등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항소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2개월 뒤에야 처음 조사가 시작돼 B양에게 범인 인상착의를 물은 점 ▶사진 한장만을 제시하며 범인여부를 확인한 점 등을 감안해 B양의 경찰에서의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같은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화상증언 등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배려한 증인신문 절차가 있는데 증인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엄벌이 예상되는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 외에 증거가 없는 사건을 증인신문 없이 유무죄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