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한·일 관계에 대해 긍정적(‘매우 좋다’ 또는 ‘좋은 편이다’)이라고 본 한국인은 3.7%에 그쳤다. 중앙일보와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010년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 때 긍정적으로 본 답변(24.2%)을 크게 밑돌았다. 반면 한·일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한국인은 78.5%로 5년 전(22.8%)에 비해 세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일본에서도 한·일 관계에 대해 부정적(54.6%)이라는 의견이 긍정적(5%) 응답을 압도했다. 5년 전만 해도 일본인의 한·일 관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12%로 긍정적(30%)보다 적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책임에 대해 한국인은 일본에 있다(62.7%)고 본 반면 일본인은 한·일 양측에 있다(67.2%)는 답변이 많았다.
한·일 수교 50년 기획 - 중앙일보·니혼게이자이신문 공동 의식조사
“한·일 관계 좋다” 한국 4% 일본 5%
5년 전 24%·30% 크게 밑돌아 … 과거사에 부정적 감정 압도
크게 늘어난 상호 부정적 인식
일본, 계속되는 사과 요구에 불만 … “한국 정치지도자 발언 원인” 30%
중앙일보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한국과 일본의 상대국에 대한 악감정이 크게 늘어난 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응답에서 한·일 간 차이가 극명하다.
상대국에 악감정을 갖는 이유에 대해 한국은 ‘과거사 문제’(54.8%), ‘독도 문제’(20.1%), ‘정치지도자 발언’(16.6%), ‘일본인의 국민성’(7.3%) 순으로 답했다. 반면 일본은 ‘한국인의 국민성’(35.2%), ‘박근혜 대통령 등 정치지도자 발언’(29.5%), ‘역사 문제(22.1%)’, ‘독도 문제’(9.9%)로 거의 역순이었다. 일부 일본인은 한국이 하나를 들어주면 다른 걸 요구하는 등 계속해서 요구 조건을 바꿔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움직이는 골대론’을 주장한다. 이들은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식민 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음에도 한국이 계속해서 사과를 요구하는 걸 예로 든다.
일본에선 터무니없는 내용의 혐한 서적과 악의적 주간지 기사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왕 사과 발언(2012년 8월) 이후 대립이 장기화되면서 한국에 대한 이질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일본 언론들이 한국에 안 좋은 기사를 의도적으로 부풀리는 경향이 최근 1~2년 이어지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이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과거사 등 문제로 강경하게 맞서기만 했지 그동안 ‘일본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외교’는 사실상 방치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의 일본에 대한 비난 일변도 보도가 한국 내 여론을 ‘과거 지향’으로 굳힌 측면도 있다.
한국에서 일본에 호감(‘매우 좋다’와 ‘좋다’의 합계)을 갖는 응답은 5년 전에 비해 소폭(18.7%→14.5%) 감소했다. 일본에선 절반으로 줄었다(33%→16.6%). 나쁜 감정(‘싫다’ ‘매우 싫다’ 합계)을 내비친 이는 한국(36.2%→58%)과 일본(10%→28.3%) 모두 크게 늘었다. 상승 비율은 일본이 앞서지만 절대적 수치에선 한국이 일본을 싫어하는 응답이 일본이 한국을 싫어하는 응답보다 훨씬 높다. 일본 국민의 경우 ‘어느 쪽도 아니다’(54%)는 일본인 특유의 신중한 답변이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다.
의외의 결과도 나왔다. 일본의 20대의 경우 호감이 36.8%인 반면 악감정은 6.1%에 불과했다. ‘네토우요(ネトウヨ·인터넷상의 우익을 뜻하는 일본어)’의 중심세력이 20대인 만큼 부정적 답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달랐다. K팝 등 한국 대중문화 파워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위안부 문제 대응’을 놓고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일본 국민은 ‘충분히 대응했다’(21.4%), ‘일정 부분 대응했다’(42.6%)고 여기는 반면 한국 국민은 두 응답을 합해도 9.7%에 불과했다. 한국은 ‘불충분했다’(45.7%), ‘ 상처를 키웠다’(43.7%)가 압도적이었다. 이 같은 인식 차이가 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협의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지, 반대로 양국 정부 간 버티기가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없는 한 양국 국민 간 갈등의 불씨는 재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정재홍 기자 hongj@joongang.co.kr 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