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의 사전적 정의는 물가가 전반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대표적 사례다. 자산 거품이 꺼진 이후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물가가 하락하고, 이것이 다시 소비·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과정이었다.
올 1~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다. 지난해 같은 기간(1.3%) 대비 절반에도 못미친다. 담뱃값 인상 효과(0.6%포인트)를 제외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다. 급기야 한은도 연초 1.9%로 내다봤던 올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4월에는 0.9%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일각에서 '디플레 초입'이란 진단을 내놓는 근거다.
하지만 외형과 달리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일본이 디플레에 진입하기 직전인 1994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였다. 소비자물가 구성 품목들 중 가격이 떨어진 품목의 비중도 한해 전 34%에서 47%로 급격히 늘었다. 반면 올 1~4월 한국의 경우 하락 품목의 비중은 26.8%(129개 )로 지난해(127개)와 거의 같다. 그럼에도 물가상승률이 반토막 난 건 특정 품목의 하락세가 가팔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특히 석유·도시가스 등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을 직접 받는 7개 품목의 물가상승률 기여도는 지난해 -0.2%포인트에서 올해 -1.4%포인트로 확대됐다.
국내 가격 하락 품목 비중은 최근 미국(36%), 유럽연합(37%)과 비교해도 높지 않은 수준이다. 한은 측은 "국내의 경우 원자재 가격 하락같은 공급 요인의 영향으로 하락품목 수가 증가한 것으로 물가하락세가 광범위한 품목으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