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단두대로 정권 유지 로베스피에르, 본인도 제물 돼
에티오피아 독재자 멩기스투, 집권 14년간 희생자 150만명
뒤발리에 아이티 대통령 부자, 비밀경찰 ‘통통 마쿠트’로 통치
나이지리아 군부 독재자 고원, 국가 통합 명분 소수 종족 탄압
1789년 7월 14일 대혁명 후 프랑스는 내우외환에 휩싸였다. 식량이 부족해 민란이 이어졌고, 혁명으로 쫓겨난 귀족은 외세와 손잡고 혁명 정부를 무너뜨리려 했다. 혁명 정부는 혁명을 수호한다며 1793년 혁명 재판소와 공안 위원회를 만들었다. 공포정치의 서막이었다. 혁명 정부의 반대세력은 반혁명 분자로 몰렸고,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특히 ‘기요틴’이라 불리는 단두대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공포정치의 상징이었다.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뿐만 아니라 로베스피에르의 혁명 동지인 당통, 당대 유명 과학자인 라부아지에 등이 단두대에서 희생됐다. 루이 16세의 경우 몰래 외국으로 망명하려다 붙잡혔다. 그에 대한 재판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혁명 법률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왕은 무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며 재판을 강행했고 결국 루이 16세는 사형됐다. 공포정치 기간 중 2만50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혁명 정부는 “반혁명 분자들에 대한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며 공포정치를 정당화했다.
공포정치는 1794년 7월 27일 로베스피에르 일당이 반대파의 반란으로 체포되면서 종식됐다. 로베스피에르는 체포 다음날 단두대로 끌려갔다.
현대에 들어서도 공포정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속속 독립한 제3세계 국가나 공산권 국가의 정권 상당수는 공포정치에 의존했다. 특히 쿠데타와 같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집권한 세력은 정당성이 약하기 때문에 정권을 지키는 데 공포정치를 제외하곤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멩기스투의 공포통치 기간을 에티오피아에선 ‘레드 테러(Red Terror)’라고 부른다. 멩기스투는 91년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 인근 짐바브웨로 도망갔다. 에티오피아 법원은 궐석재판을 열고 그의 집권 기간 중 탄압·내전·기아 등으로 숨진 150만 명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죄판결을 내렸다.
아이티 국민은 밀짚모자와 푸른 셔츠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마체테’라는 정글도와 권총으로 무장한 통통 마쿠트 대원을 무서워했다. 그들은 지위를 이용해 국민의 재산을 마음대로 빼앗았다. 아이티의 공포정치는 86년 뒤발리에의 아들인 장클로드 뒤발리에가 축출되면서 끝났다.
고원은 67년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하나의 나이지리아’를 내걸며 ‘비아프라 전쟁’을 일으켰다. 70년 1월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비아프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 1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이지리아 정부군은 전쟁기간 중 비아프라 지역 주민을 상대로 집단 살인·강간·약탈을 벌였다. 특히 나이지리아 정부군 공군은 ‘도살자’로 불렸다. 융단폭격 대상에 난민캠프와 시장을 포함했기 때문이었다. 난민 구호활동을 벌였던 국제적십자사 직원과 전쟁 취재에 나섰던 서방 특파원도 폭격으로 숨졌다. 나이지리아의 다른 소수 종족이 독립을 꿈꾸지 못하도록 공포통치가 활용된 것이다. 비아프라 전쟁은 르완다 집단 학살 등 이후 아프리카 대륙 종족 분쟁의 선례가 됐다.
북한, 공포지수 가장 높은 국가에 포함
이 밖에도 캄보디아의 폴 포트(1925~98),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1937~2006)도 공포정치로 악명이 높은 독재자였다.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지역을 점령한 이슬람국가(IS)도 공포정치를 구사하고 있다. IS는 인질과 포로를 잔인하게 처형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공개했다. 대중에게 두려움을 심어줘 자신들의 실체를 과장하는 방법으로 국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게 IS의 목표라는 분석이다.
공포정치의 정도를 재는 지수도 나왔다. 정치적 공포 등급(PTS·Political Terror Scale)이다. ‘정치적 공포’에서의 ‘공포’는 초법적 처벌·고문·실종·정치적 감금 등 국가나 기관이 신체나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하는 행위를 뜻한다. PTS는 1~5의 수치로 표현된다. 가장 높은 5의 국가는 공포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지도자가 개인 또는 이념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미국 국무부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이 각각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PTS 조사를 한다. 미 국무부의 2013년 지수에 따르면 PTS 5의 국가는 북한·시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 8개국이었다. 미 국무부와 AI 공통으로 최근 5년간 평균 PTS가 5를 기록한 국가는 북한·수단·파키스탄·콩고민주공화국 등 4개였다. 북한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내전이나 내란이 공포정치의 원인이다. 북한만 유난히 독재자의 강압적 통치수단으로 공포정치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국가에선 여론조작 통해 겁주기도
공포정치는 현대 정치학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지도자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의 불안을 의식적으로 높이는 정치적 수단’으로서 공포정치(Politics of Fear)를 정의한다. 사회적 연대가 선에 대한 열망보다는 악에 대한 반발에 의해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공포정치가 독재국가나 공산국가뿐만 아니라 민주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의견이다. 민주국가에선 국민의 신체나 기본권을 훼손하지 않지만 미디어나 여론을 조작해 겁을 주거나 증오심을 키우는 방법이 동원된다. 공포정치를 통해 유권자로부터 표를 얻거나 대부분의 국민이 꺼리는 사업이나 정책이 수용될 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뚜렷한 증거가 없는데도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한 게 공포정치의 한 사례라고 진보적 정치학자들은 주장한다. 베네수엘라와 같은 개발도상 국가의 집권 세력은 미국이라는 외세를 향한 대중의 비정상적 증오를 북돋운다. 국내의 소수 인종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반감을 통한 공포정치도 있다. 히틀러는 반유대주의를 집권에 동원했고, 후에 나치정권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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