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명의 총리가 사퇴했다. 총리 후보였던 3명은 중도에서 낙마했다. 총리라는 직책은 그 화려함에도 불구 한국에서는 그다지 빛나 보이지 않는다. 총리 공관은 청와대 인근 서울 삼청동에 있다. 아마도 이는 대통령을 긴밀히 보좌해야하는 총리의 역할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래 희망이 총리라는 어린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서 총리는 상징적인 존재로 실질적인 파워가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매한 역할로 유명무실한 총리
스캔들 등으로 국가 이미지 훼손
역할 강화 또는 폐지 검토할 시점
그래서인지 대통령이 누군가를 혼내주기 위해서는 총리 후보로 지명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는 농담까지 나온다. 그러나 총리는 간단한 자리가 아니다. 총리는 정부조직상 가장 중요한 조언자이자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총리 역할의 약화는 우려할 만한 일이다. 모든 정부에는 2인자가 필요하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문제가 생긴 이후 2인자를 물색할 경우 이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쉽다.
미국에서의 2인자는 부통령이다. 한국의 총리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유고시 그 역할을 대신한다. 최근 미국의 부통령들은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앨 고어, 딕 체니, 조 바이든 등이 그들이다. 이들로 인해 부통령직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이와 다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가너는 부통령직에 대해 ‘전혀 필요없는 자리’라고 했다. 많은 한국인들도 아마도 총리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1등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런지 2인자인 총리라는 자리에 관심이 적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 학자로서 한국 정부의 2인자 역할을 규정하고 평가한다는 것이 주제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볼 때 한국 총리의 역할에 대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애매모호한 정체성 때문이다. 현재로선 총리의 역할을 대폭 강화하거나 아니면 아예 총리직을 없애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검증 과정 등에서의 부작용보다 총리의 역할을 통해 얻는 이익이 크지 않아서다.
앞서 언급했듯이 총리 후보자의 중도낙마나 스캔들로 인한 국가 이미지 훼손과 정치적 혼란을 심각히 따져봐야 한다. 이젠 더 이상 총리직의 성격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
한스 샤틀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2004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한스 샤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