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행히 그에게도 민들레가 있었다. 권정생이 서른여섯 살에 처음 만난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선생이다. 최근 출간된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책에는 열두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30년간 주고받은 편지가 담겨 있다. 겨울날 교회 문간방에서 이오덕을 처음 만난 후 권정생은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 지껄일 수 있었습니다”라고 쓴다. 이오덕 선생은 가난한 후배에게 7000원을 부치며 “우선 급한 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걸 확보하십시오”라고 말하고 그의 글을 알리기 위해 출판사를 떠돈다. “제가 쓰는 낙서 한 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이오덕을 신뢰한 권정생은 아픈 몸을 추스르며 계속 글을 썼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세상을 살 만큼 살아본 나이에 만났지만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은 순수하고 맑았다.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진심으로 아끼고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 때마침 이오덕·권정생과 하이타니 겐지로 등 한·일 동화작가 3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시청에 있는 서울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아이처럼 살다’다.
전시를 돌아보며 ‘동심(童心)’에 대해 생각했다. 최근 ‘잔혹동시’ 논란에서도 핵심이 됐던 그 동심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이란 내용이 아니라 어떤 ‘태도’가 아닐까. 아름답고 건강한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추한 건 추하다고 계산 없이 고백할 수 있는 마음. 내게 어떤 득실이 있는지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한껏 그리워하며 나를 내어줄 수 있는 태도. 이오덕 선생이 안동을 지날지 모른다는 소식에 “혹시 만나 뵐까 싶어 버스 정류소에서 서성거려 보았습니다”라고 쓴 권정생 선생의 수줍은 고백처럼 말이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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