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베 총리는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연설 초반 “존경하는 마이크 맨스필드, 월터 먼데일, 톰 폴리, 하워드 베이커”라며 전직 주일 미국대사들을 거명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니 여러분의 저명한 동료이자, 일본이 대사로 환영했던 분들의 이름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맨스필드는 16년간 상원의 다수당 원내대표(당시 민주당)를 지냈던 거물 정치인이었다. 먼데일은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의 부통령이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맞붙었던 민주당 대선 후보였다. 폴리는 하원의장 출신이고 베이커는 상원 원내대표이자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다. 전직 주일 미국대사들을 거론하는 자체만으로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겐 그간 미국이 대일 관계를 얼마나 중시해왔는지를 상기시킨다.
아베 총리의 ‘미국 띄우기’의 압권은 연설 말미에 있었다. 아베 총리는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 때 미군이 곧바로 지원 활동에 나선 것을 들어 “미국이 우리에게 준 것은 희망, 미래를 위한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일 동맹은 희망의 동맹”이라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구호는 ‘담대한 희망’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유권자에게 희망을 약속했는데 아베 총리는 미국으로부터 희망을 받았다고 단언했다. 그러니 ‘담대한 희망’을 내걸었던 대통령과 ‘희망의 동맹’을 하겠다는 논리다.
아베 총리의 방미 연설로 보면 오직 미국만 바라보고 주변국은 안중에도 없는 ‘미바라기 외교’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미국에만 존경을 보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선 사과를 않는다고 분노하고만 있을 게 아니다. 분노에 앞서 아베 외교가 왜 미국에 먹히는지를 냉철하게 복기하는 게 순서다. 그렇지 않으면 흥분하다가 우물 안 개구리로 소외당한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