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 뒤편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 홀, 박수가 터졌다. 임흥순(46)씨는 “흥분되는 순간이지만 영화에 묘사한 노동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삶과 일터에서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많은 여성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임흥순 감독 다큐 영화 ‘위로공단’
미술전 은사자상 … 한국 역대 최고
“가족 중 오빠·남동생 출세 위한
여성의 희생은 과거이자 진행형”
46세 임씨, 2030 수상 관행도 깨
임씨의 수상작 ‘위로공단(Factory Complex)’은 9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다. 미술관·미술제에서 퍼포먼스·영화를 적극 끌어들이는 최근 수년간의 현대미술 변화 흐름을 반영한다. 미술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임씨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영화를 만들고 있다. 경계에서 작업하는 게 예술가로서 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봉제 공장에서 미싱사의 조수로 일한 작가의 어머니에서 출발해 아시아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두루 끌어안은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됐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미술제에는 첫 초청인데, 95분짜리 영화 그대로 상영됐다. 35세 이하 촉망받는 젊은 예술가에게 주는 은사자상을 46세 임씨가 영화 전편을 상영하면서 받은 점도 이례적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첫 한국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용우 전 광주 비엔날레 대표는 “고도성장 뒤에 감춰진 고난과 슬픔은 한국만의 이야기, 혹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사회적 배경을 꿰뚫고 있는 동시에 이를 시적(詩的)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와 장르를 넘어 수상작으로 꼽혔다”고 심사단의 분위기를 전했다.
◆어머니·여동생에 대한 헌사=“수상을 가장 반길 사람은?”이라고 묻자 임씨는 “어머니”라며 미소 지었다. 10일은 임씨의 생일이기도 하다. 그는 “어머니(73)가 서울 답십리의 봉제 공장에서 40년 넘게 ‘시다’(보조)로 일하다 3년 전 대상포진이 악화되면서 비로소 일을 그만뒀고, 여동생(42)은 백화점·마트의 의류매장·냉동식품 코너에서 일했다”며 “가족 중 여성이 희생해 오빠나 남동생의 출세를 도왔던 게 우리네 과거”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미장이, 임씨는 서른까지 반지하에서 살다가 임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런 가족사를 담은 다큐 ‘내 사랑 지하’를 2002년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제주 4·3 사건과 강정마을 문제를 엮은 첫 장편 다큐 ‘비념’(2013)을 개봉하면서 영화계의 주목도 받았다.
‘위로공단’은 YH무역, 동일방직, 삼성전자 반도체, 서울시 다산콜센터 등지 65명의 여성 노동자를 지난 2년간 인터뷰해 만들었다. 70년대 구로공단, 그리고 지금의 베트남·캄보디아 일대, 첨단 산업이나 서비스업으로 이어지는 노동의 현장과 애환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들의 꿈을 담은 판타지 영상을 결합해 현실 고발형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한 단계 나아갔다. 임씨는 “단순히 과거 일어난 일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지금을 말하고 싶었다. 현대미술이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소임은 바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원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지난해 성곡미술관에서 ‘내일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또 다른 영화 ‘환생(Reincarnation)’이 현재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비엔날레와 뉴욕 현대미술관 PS1에서 상영 중이다.
베니스(이탈리아)=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베니스 비엔날레=전 세계 300여 비엔날레 중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국제 미술전이다. 격년으로 미술전과 건축전을 병행한다. 올해 비엔날레는 밀라노 엑스포와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예년보다 개막을 한 달 앞당겨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