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노트북을 열며] 싫어하는 세 가지에 갇힌 검찰

중앙일보

입력 2015.05.01 00:05

수정 2015.05.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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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리스트로 시작한 수사가 성공합디까.”

 수년 전, 특수 수사로 날리던 검찰 간부에게서 들은 말이다. ‘○○○리스트’가 언론에 폭로되면 수사 검사는 한마디로 죽어난다고 한다. 리스트에 등장한 이름은 다수 국민에겐 이미 죄인이다. 하지만 검찰은 할 일이 태산이다. 기초적인 사실관계부터 대가성 등 범죄 구성 요건까지 탄탄한 입증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제아무리 일 잘하는 ‘칼잽이’라도 힘든 건 힘든 거다. 그러나 누가 기다려주는가. 언론은 시쳇말로 의혹을 ‘막 던지고’, 국민은 검찰의 해명 논리를 부정한다. 기껏 의혹 몇 개를 규명해 봤자 "왜 다른 건 못 밝히느냐”는 비판이 돌아오기 일쑤다. 노련한 특수통의 엄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검사는 언론에 등장한 리스트에 포비아가 있다.

 또 하나, 특별검사라는 말에도 검사들은 경기를 일으킨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형 사건일수록 멋지게 일 좀 해보려고 하면 야당은 특검을 거론한다. 수사 의지까지 의심하면서. 정치권은 특검을 ‘막 던지고’, 국민은 검찰의 능력을 부정한다. 특검이 도입되더라도 정작 중요한 일은 파견 검사가 거의 해결하는데도 검찰은 설 자리가 없다. 자존심 짓밟힌 검사들이 특검을 좋아할 리 없다.

 검찰이 싫어하는 세 번째는 특별사면이다. 검사들은 공식 언급을 꺼린다. 임명권자(대통령)의 법적 권한이기 때문이다. 대신 머릿속엔 모순(矛盾)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밤잠 포기하며 잡아들인 범죄자가 풀려나는 장면에 찍소리도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검찰권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준 임명권자가 특사를 ‘막 던진다’. 법률가로서의 정의감과 양심이 법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 검사들은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 특사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되는 검사들의 애환이다.


 최근 정치권과 법조계를 뒤흔든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는 공교롭게도 검사들이 싫어하는 세 가지가 다 모였다. 리스트에 대한 국민적 의혹은 커져만 가고,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특검을 외친다. 성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은 두 정권에 걸쳐 논란이다.

 난국을 헤쳐나가야 하는 검사들에게 딱한 감정을 느낀다. 통과하기 어려운 어둡고 좁은 터널처럼 보여서다. 무능한 검찰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을까. 힘겹게 내놓을 수사 결과는 특별사면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고 정치 개혁의 밑거름이 될 것인가.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겠다”는 문무일 수사팀장의 말 외에는 해법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수사팀의 다짐이 흔들리지 않기만을 기대해 본다. 야당의 참패로 끝난 4·29 재·보선 결과를 돌아보거나, 정치 개혁을 언급한 대통령을 곁눈질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생채기가 나더라도 터널 끝 한줄기 빛만 보고 막 달려보길 바란다. 그 빛 너머에 국민의 신뢰가 있다.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