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한·일 회담(53년 10월 6~21일)은 ‘구보다 망언’으로 협상 개시 2주 만에 결렬됐다. 일본 수석대표인 구보다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郞·당시 51세·오른쪽 사진)는 한국의 청구권 주장에 대해 “일본은 36년간 많은 이익을 한국인에게 주었다. 일본이 (한국에)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에 점령돼 더욱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 측 홍진기(당시 36세·왼쪽) 대표는 “마치 일본이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인은 잠만 자고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말하고 있으나, 한국인은 스스로 근대국가를 만들었을 것”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국 대표단은 구보다 발언을 ‘회담의 기본정신을 망각한 묵과할 수 없는 망언’으로 규정해 회담을 중단했다. 여기에 일본 오카자키 가쓰오(岡崎勝男) 외상까지 “구보다 발언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한 것일 뿐”이라는 공식입장을 표명함으로써 한·일 회담은 이후 4년 반 동안 열리지 못했다.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25> 한·일 회담, 동력을 만들다
교착 거듭했던 5·16 전 한·일 회담
정리=전영기·최준호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