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파군재, 신숭겸 장군…. 대구시 동구 지묘동에 순서대로 위치한 산과 고개, 사당의 이름이다. 이들은 모두 고려 태조 왕건(877∼943)의 동수전투와 관련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왕건은 신라를 공격한 후백제의 견훤 군사를 무찌르기 위해 927년 동수(현 지묘동)에서 전투를 벌인다. 여기서 왕건은 전투에 패하고 도망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왕산은 왕건이 숨어 있었다고 해서, 파군(破軍)재는 견훤 군사가 왕건의 군대를 깬 곳이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투에서 신숭겸(?∼927)은 왕건의 옷을 입고 견훤 군사를 유인해 싸우다 전사했다.
그 자리에 신숭겸 사당이 세워져 있다. 동구 해안동과 안심동은 동수에서 동쪽으로 도주하던 왕건이 적의 포위망을 벗어난 뒤 ‘얼굴을 펴고’(解顔), ‘안심했다’(安心)는 데서 유래했다.
트레킹 코스에는 볼거리도 풍성하다. 신숭겸 사당에 들러 장군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대구자연염색박물관(중대동)과 방짜유기박물관(도학동)에선 천연염색과 방짜유기 등 전통문화를 만날 수 있다. 도동에는 천연기념물 제1호인 도동 측백나무숲이, 평광동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 사과나무(수령 82년)도 있다. 왕건 길의 또 다른 특징은 환경친화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마을을 지나는 코스 일부를 제외하고 80% 이상이 흙길이다. 좁은 길은 폭이 80㎝에 불과한 곳도 있다.
김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