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공기부양정 잡는 '킬러 로켓' … 21세기 신기전 쐈다

중앙일보

입력 2015.04.27 00:36

수정 2015.04.2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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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삼, 이, 일. 발사!”

 지난 22일 오후 4시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종합시험장. ADD가 새로 개발한 ‘비밀병기’ 발사실험이 진행됐다. “발사!” 명령이 내려지자 2.75인치(70㎜) 유도로켓이 흰색 연기를 뿜으며 날아갔다. 로켓은 9초를 비행한 뒤 2.8㎞ 떨어진 곳에서 40노트(시속 76㎞)로 움직이던 무인 함정에 내리꽂혔다. 2012년 개발을 시작한 유도로켓의 발사실험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북 부양정 10분이면 백령도 도달
스스로 방향 바꾸는 로켓으로 타격
트럭 이동식으로 북 반격 힘들어
신기전 쐈던 안흥서 시험발사
이르면 내년에 실전 배치될 듯

 잠시 뒤 이어진 발사실험에서도 표적으로 삼은 무인 함정이 로켓에 정확히 일격을 당하고 침몰했다. 정홍용 ADD 연구소장은 “무인고속정은 3억원짜리인데 이를 침몰시켜 버렸으니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추가 실험을 위해선 3억원을 더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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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D는 올 초 2발의 시험발사에 이어 이날 2발을 더 쐈다. 유도로켓은 100%의 명중률을 보였다. 군 당국은 예산에 맞춰 앞으로 6발의 발사실험을 할 계획이다. 결과가 좋을 경우 이르면 내년에 실전 배치된다.

 유도로켓은 종이컵 윗부분 굵기(70㎜)로, 북한 공기부양정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됐다. 북한은 최근 백령도 맞은편 지역에 새로운 공기부양정 기지를 건설했다. 백령도 등 서북도서 지역의 섬들을 기습적으로 점령할 수 있어 공기부양정을 타격하는 무기가 필요했다. 북한 공기부양정은 해상에서는 초고속인 시속 90㎞ 이상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군 관계자는 “북한 공기부양정이 황해도 장산곶에서 출발하면 10여 분 만에 백령도에 닿을 수 있다”며 “우리도 해안포가 있지만 1970년대 사용하던 포탑을 떼어서 설치한 것이라 명중률이 낮고, 사거리도 짧아서 빨리 가동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대공 미사일인 패트리엇이나 공대지(슬램-ER) 등의 유도미사일은 가격이 워낙 비싼 데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선 전투기나 별도의 부대를 보유하고 있어야 해 공기부양정 맞춤형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서 ADD는 북한의 반격에 대비해 발사 트럭을 활용해 ‘쏘고 피할 수 있는(fire and foget)’ 방식을 택해, 국산 유도로켓을 개발한 것이다.

 더욱이 한 발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외국산 유도로켓에 비해 국산은 발사 트럭과 탄약을 합쳐 한 발에 수천만원 정도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ADD는 설명했다.

 ADD 관계자들은 새로 만든 유도로켓을 ‘신기전(神機箭)의 후예’라고 부른다. 신기전은 1448년 조선 세종 때 제작된 병기로, 고려 말 최무선이 제조한 화기(火器)를 개량한 것이다. 화약이 연소되면서 가스를 분출시켜 로켓처럼 날아갈 수 있도록 한 로켓형 병기다. 공교롭게도 신기전 발사실험을 한 곳이 안흥종합시험장 부근이었다고 한다.

 새로 개발한 유도로켓의 정확성은 몸체에 지닌 각종 장비에 비밀이 담겨 있다. 유도로켓은 레이더와 트럭에 장착된 타즈(TODS·표적탐지기)가 목표물을 인지한다. 발사 후 어느 정도 날아가면 시커(seeker·탐색기)가 작동하면서 비행 방향을 자체적으로 바꾸며 목표물을 따라간다. ADD는 로켓에 열상탐색기와 관성센서, 열전지, 귀날개, 유도조종장치 등을 탑재했다. 트럭형 발사대에 싣고 다닐 수 있고, 발사에 필요한 인원은 운전수를 포함해 3명이면 된다. 그만큼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군 관계자는 “공기부양정 킬러로 ‘신기전의 후예’가 등장해 서북도서 방어에 한층 힘이 붙게 됐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당초 개발 자체를 비밀에 부치다 이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억제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실험 장면을 공개했다.

안흥=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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