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 양극화는 중국에 더 많은 외교 공간을 열어주었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 의회는 오바마 행정부가 요청한 국제통화기금(IMF) 쿼터 조정 개혁안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면서 IMF 지분율이 4%에 불과한 중국과 여타 신흥 경제 국가들을 실망시켰다. 새로운 국제 금융 질서에 대한 요구와 명분을 높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은 기존 브레턴우즈 금융 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비관적으로 보고 ‘양다리 헤징(hedging) 전략’을 구사해 왔다.
워싱턴 정치의 난맥상이 미국의 리더십을 계속 제약한다면 중국은 국제 무대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 미 행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마저 의회의 반대로 무산된다면 미국의 세계 무역 전략과 아시아 회귀 전략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최근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TPP가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항공모함과 맞먹는 전략적 가치를 지녔다고 역설했다. TPP가 현실화되지 못한다면 중국이 꿈꾸는 ‘신 실크로드 전략(一帶一路)’이 꽃피울 공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중심의 국제 경제 질서에 정면 도전할 힘은 아직 없다. 중국 지도부는 현재 내부적으로 심각한 정치·경제·사회·환경 문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다. 중국은 외형상 G2 반열에 올랐지만 안으로는 고속 성장의 후유증을 치유하며 ‘중진국의 덫’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 혼자 힘으로 국제 규범과 비전을 제시할 만한 소프트파워도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마주칠 현실은 구질서와 신질서가 병존·경쟁·보완하는 다원화된 글로벌 시스템이다. 이것은 많은 국가, 특히 미국의 동맹국들이 직면한 공통된 도전이다. 미·중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분권화된 국제 질서는 중첩된 국제기구들의 기능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특정 국가의 이익이나 한쪽으로 편드는 것은 위험하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나라의 외교정책 조율을 혁신해야 한다. 강대국들뿐 아니라 주요 신흥 국가들의 내부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역전문가들과 여러 국제기구의 운영 메커니즘을 경험한 정책전문가들이 함께 드림팀을 만들어야 한다. 진영 논리를 벗어나 우수한 인재를 널리 포용하고 키워야 한다. 확장된 집단지성만이 다원화된 국제 질서의 그물망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혁신은 도량과 안목을 갖춘 정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내부 정치의 양극화로 세계사적 흐름을 선도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합의의 내치(內治)가 21세기형 외치(外治)의 근본이자 시작이다.
손인주 홍콩대 국제정치학 교수·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칩 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