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 기자의 한끼라도] 요리 안 하는 남편을 바꾼 '마법의 오일'

중앙일보

입력 2015.04.17 17:21

수정 2015.04.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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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JTBC 요리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화제가 된 식재료가 있습니다. 배우 소유진의 냉장고에 있던 트러플(송로버섯)이 들어간 겨자 소스입니다. 패널들은 ‘금보다 비싸다’고 알려진 트러플에 열광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에는 부럽다, 놀랍다, 신기하다는 네티즌의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순간만큼은 '미다스의 손' 백종원 셰프를 남편으로 둔 소유진 씨가 부럽지 않더군요. 결혼 후 한번도 떨어진 적 없는 우리집 식재료 리스트 1순위가 트러플 오일이기 때문입니다.

‘검은 다이아몬드’ ‘대지의 향기’라 불리는 트러플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같은 지역에서만 10월에 채취하는 버섯입니다. 떡갈나무 숲에서 자라는데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땅 속에서 자라 감자처럼 캐는 채소입니다. 검은 돌멩이처럼 생겼지만 향이 아찔하다 못해 지독합니다. 쿰쿰하고, 퀘퀘합니다. 페로몬 향수란 게 존재한다면, 그걸 마시는 기분입니다. 처음 향을 맡은 사람은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주기적으로 이 향을 접하면, 어느 순간 코가 먼저 트러플을 그리워합니다. '금 값'이라 제철 생 트러플은 꿈도 못 꾸고, 트러플 향을 압착한 오일, 트러플을 저며 넣은 소스로 만족합니다. 이렇게라도 트러플을 느낄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요.

평범한 요리도 트러플 오일 한 방울이면 특별해집니다. 파스타가 그렇습니다. 소금을 넣어 물을 팔팔 끓인 뒤 면을 삶습니다. 면의 굵기에 따라 삶는 시간이 다른데, 스파게티나 링귀니, 탈리아텔레 면은 보통 8~10분 걸립니다. 프라이팬은 식용유 대신 트러플 오일을 적당량 둘러 예열합니다. 통마늘, 양송이버섯, 칵테일 새우 또는 베이컨 등 남은 식재료를 이것저것 넣어 볶으면, 재료에 트러플 향이 고루 뱁니다. 삶은 면을 넣고 면에 윤기가 돌 정도로 트러플 오일을 넉넉히 뿌립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는 메뉴 못지 않은 황홀한 한 끼가 완성됩니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까지 트러플 오일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입니다. 지난 2년간 제가 시시때때로 트러플 파스타, 트러플 샐러드를 만든 탓에 이제는 마니아가 됐습니다. 떨어질 때쯤 되면 혼자 백화점에서 사 올 정도로 애착을 보입니다.


사실 남자는 여자가 없을 때 절대 혼자 음식을 해먹지 않는 묘한 습성을 지닌 동물입니다. 냉장고에 산해 진미가 가득하더라도 말이지요. 그 습관을 트러플 오일이 해결해줬습니다.

마감 때문에 주말에 회사에 있거나, 출장을 갈 때면 남편은 트러플 오일 하나로 이런저런 요리를 해먹습니다. 계란 프라이 만들 때도 쓰고, 샐러드 소스로도 씁니다. 심지어 흰 쌀밥에도 트러플 오일을 한 방울 뿌려봤다고 합니다. 나와 있으면 끼니 챙겼는지가 걱정인데, 그런 점에서 남편의 건강을 송로버섯에 빚 진 셈이네요.

트러플을 사랑한 가장 대표적인 미식가는 프랑스 왕 루이 14세입니다. 쌀밥, 김치, 몇 가지 반찬으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식탁이 트러플 오일 한 방울로 왕의 식탁처럼 풍요로워지기 바랍니다.

강남통신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이영지 기자의 한끼라도]
솥밥 짓는 시간, 아침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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