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에 등장한 반기문 … 성완종 생전 "부담없는 사이"

중앙일보

입력 2015.04.17 01:54

수정 2015.04.1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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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충청포럼 찾은 반기문 2013년 8월 2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충청포럼 행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이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과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당시 반 총장은 귀향 휴가를 받아 귀국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동그라미 안),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왼쪽 첫째)도 행사에 참석했다. 반 총장은 성 전 회장이 2000년 만든 충청포럼의 창립 멤버다. [사진 시사저널]

“반기문을 의식해 (이완구 총리가) 계속 그렇게 나왔다. 반기문과 가까운 건 사실이고 ….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지난 9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검찰 수사가 자신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친분 때문에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완구 총리가 차기 대선을 앞두고 같은 충청 출신인 반 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기획수사를 벌였다는 얘기다.

“내가 반기문과 가깝다고 이완구가 계속 그렇게 … ” 녹취록 계기로 본 인연
반 총장 귀국 때마다 충청포럼 참석
정치후견인 자임한 성 전 회장
“복권되면 20대 총선 무소속 출마
반기문 올 때를 미리 준비해야”

 이 총리는 16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반 총장의 대권과 저를 결부해 고인을 사정수사했다는 건 심한 오해”라고 강조했다.

 ‘성완종 수사’ 파문이 반 총장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성 전 회장이 반 총장과 가까운 건 사실이다. 그는 지난해 말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반 총장에 대해 “나와 가깝고, 서로 부담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이 김대중 정권 때 차관을 하다가 (장관 인사에서) 물을 먹었다. 그때 제가 (충청)포럼을 함께 만들었다”고도 했다.

성 전 회장이 2000년 만든 충청포럼은 충청도 출신 정·관계 인사들의 모임으로, 반 총장은 창립 멤버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방한할 때마다 충청포럼 모임에 참석했다.


 본지가 입수한 ‘성완종 비망록(다이어리)’에도 반 총장의 이름이 세 차례 등장한다. 2012년 10월 30일 낮 12시엔 ‘반기문 가족 오찬’이라며 국회 귀빈식당에서 식사를 같이한 것으로 돼 있다. 반 총장이 서울평화상을 받기 위해 귀국한 때다. 그러나 당시 반 총장의 일정은 국회의장단 및 주한 외국대사들과 함께한 공식 일정이었다. 2013년 8월 26일과 27일에도 반 총장을 롯데호텔에서 만났다고 적혀 있다. 26일 일정에는 ‘충청포럼 운영위 참석’이라고 돼 있다. 이때는 반 총장의 귀향 휴가(22~27일) 기간이다.

 성 전 회장은 그동안 반 총장의 정치 후견인임을 자임해 왔다. 지난해 6월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잃은 뒤 가까운 인사들에게 “복권되면 20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나가도 당선될 수 있다. 반 총장이 올 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성 전 회장의 측근은 “의원직을 잃은 뒤 여당 실세들에 대한 성 전 회장의 서운함이 컸다”고 전했다. 공교롭게 성 전 회장이 의원직을 상실한 뒤 야권에선 ‘반기문 영입론’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16일 “반기문을 띄우는 사람들이 ‘뉴DJP 연합’을 하자는 요청을 해왔다”며 “충청 출신 반 총장이 호남과 손잡으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 전 회장이 ‘밥을 한번 먹자’고 했지만 (연합했다가) 반 총장이 출마하지 않으면 당 후보들이 다 죽어버리기 때문에 내가 뉴DJP 연합을 틀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야권 내에선 김한길 전 대표도 성 전 회장과 ‘반기문 대망론’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있다. 김 전 대표는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날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 2013년 8월엔 충북 충주에서 열린 세계조정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반 총장 부부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이상민(대전 유성) 의원은 “성 전 회장이 반 총장을 물심양면 지원했다는 것은 충청권에선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반 총장이 정치를 한다고 가정하면 성 전 회장의 죽음으로 큰 손실을 본 셈”이라고 말했다. 박수현(충남 공주) 의원도 “성 전 회장이 이끌던 서산장학회는 그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로 본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 데 기여한 충청도가 ‘팽’ 당했다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