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유지비도 부담스럽고 하여 올봄부터 전철로 통근을 시작했다. 9호선으로 노량진에 가서 전철을 타고 주안역, 그리고 다시 버스로 법원에 간다. 통근 수단이 바뀌자 새로운 감각에 익숙해져야 했다. 밀고 들어오는 타인의 체온, 아침부터 불그레한 노인분의 술 냄새, 쩌렁쩌렁 객차를 울리는 아주머니의 전화 통화, 전철역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는 행렬의 구보 소리, 곤드레만드레~ 귀청을 찢는 버스 라디오의 트로트에 이어지는 하이톤의 외침들. 다음 정차할 역은! 디스 스탑 이즈! 운전면허는 ○○운전학원!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감각의 공세를 무력하게 견딘다. 조금이라도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시선을 바쁘게 움직인다. 타인은 참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내 통근길은 서울 도심으로 가는 방향과 반대라 앉아 갈 수 있는 천국인데도 자가용에 익숙해진 사치스러운 감각은 비명을 지르기 일쑤다. 죄송한 맘으로 앉아 9호선 지옥철 기사를 스마트폰으로 읽는다. 압사 직전의 비명이 느껴지는 사진 아래 2005년 다른 민자 사업의 수요 과대포장 비판 여론 때문에 9호선 수요 예측은 지나치게 적게 되었다, 증차 예산 부담을 놓고 시와 기재부가 줄다리기를 하느라 증차가 늦었다는 등의 기사가 빼곡하다.
수요 예측, 예산 부담 물론 다 어렵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자기가 체험해 보지 못한 감각을 이해하는 일이다. 아침 출근 시간은 누구나 바쁘고 아침잠은 꿀을 넘어 피 같다. 준비 시간이 더 걸리는 여성들은 더 힘들고 하물며 애 있는 집은 전쟁통이다. 아침의 1분은 다른 시간대의 1분과 가치가 다르다. 그런 시간에 정체로 인한 변수 없이 안정적으로 20분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눈 딱 감고 10분만 지옥에서 버티자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4량짜리 9호선을 만드는 과정을 지배한 감각은 어느 쪽의 것이었을까. 기사가 운전하는 널찍한 차량 뒷자리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경제신문을 넘겨 보는 분들의 우아한 감각은 아니었겠지.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