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스위스 어린이집이 얼마나 비싸길래 싶으실 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4년 가족 통계를 볼까요. ‘유아 데이케어 비용이 평균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 항목이 있습니다. 1위는 단연 스위스로, 아이 한 명을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내는 비용이 평균임금의 67%를 차지합니다. 월급이 100만원이라면 어린이집 비용이 67만원이란 얘깁니다. 정부 지원금과 세금 공제액을 빼고 난 금액(개인 순부담액)도 임금의 30%에 이릅니다. 실제로 취리히 어린이집 종일반 비용은 평균 2500스위스프랑(약 286만원)으로, 아이 한 명당 정부 지원금 200스위스프랑(약 23만원)으론 어림도 없습니다. 어지간한 직장에 다녀서는 어린이집 종일반은 손 떨려서 꿈도 꿀 수 없죠. 부모 중 한 명이 풀타임 직장 근무를 포기하는 비중이 높은 건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통계에서 개인 순부담액이 0원에 수렴하는 나라가 OECD 국가 중 딱 한 곳 있습니다. 어딘지 짐작이 가시나요? 놀랍게도 한국입니다. 이런저런 지원금을 감안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데 부모가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이 없다는 겁니다. 한국의 뒤를 잇는 게 스웨덴(6%), 스페인(8%), 독일(11%) 등의 복지국가입니다. ‘GDP에서 아동 양육 관련 공공지출이 차지하는 비율’ 항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웨덴(0.085%)에 이어 한국(0.599%)이 OECD 국가 중 2위입니다. 우리가 복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프랑스(0.444%), 독일(0.093%)은 그 다음입니다. 스위스(0.086%)는 거의 꼴찌 수준이고요. 이 통계만 보자면 한국은 최소한 영·유아 양육 비용 면에선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입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의 부모 중 어린이집 원비가 저렴하고 정부 지원금이 많아 아이 키우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통계수치만 보면 여타 복지국가들보다 오히려 나은 편인데 체감하는 어려움이 더 큰 이유는 뭘까요.
첫째로 근무환경입니다. 어린이집 종일반이라도 부모가 ‘칼퇴’를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집니다. 새벽같이 출근해 툭하면 야근인 환경이라면 종일반 비용 외에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돌보는 비용이 추가됩니다. 스위스 최대 은행 UBS에서 일하는 친구 산드라(32)는 각각 세 살과 9개월인 남매를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매일 오후 5시면 퇴근해 아이들을 데리러 갑니다. 산드라는 “일하랴, 애들 돌보랴 몸은 힘들지만 남의 도움 없이 두 가지 다 할 수 있으니 큰 불만은 없다”고 합니다.
둘째는 근무제도의 유연성입니다. 스위스의 경우 14세 이하의 자녀를 둔 가정에서 부모 중 한쪽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비중은 40%가 넘습니다. 주 3일만 일하고 급여도 60%만 받는다면, 이 때문에 자리가 없어지거나 승진에서 누락될 염려가 없다면, 몇 년 뒤 아이가 커서 손이 덜 갈 때쯤 풀타임 근무로 복귀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니 환상이 아닙니다. 저출산과 노동력 문제를 한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간접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교육환경입니다. 스위스에선 아이가 만 네 살이 되기 전엔 어딜 보내도 엄청난 돈이 들지만 그 이후엔 모든 게 무료입니다. 신뢰할 수 있고 수준 높은 공교육에 돈이 들지 않으니 부모들은 “네 살만 되면”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죠. 좋은 날이 온다는 희망만 있어도 현재를 버틸 힘이 솟아나는 건 만고의 진리 아니겠습니까.
김진경 jeenkyung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