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국제부 기자
사회 생활을 하며 부모님 일에 참견하는 게 늘어났다. 아빠·엄마가 정년을 넘기면서 그 빈도가 더 잦다. 눈을 찌푸리고 들여다보던 구식 노트북은 그만 버리시라고 잔소리, 알록달록한 아웃도어만 입지 말고 전에 사드린 좋은 옷도 꺼내 입으시라고 잔소리. 부모님은 “팔자에도 없는 시집살이를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도 잔소리는 더 늘어만 간다.
친구도 내 얘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친구는 최신 스마트폰을 사드리려다 어머니와 대판 싸웠다고 한다. “쓰던 전화기가 고장 난 것도 아니고 손에 익어서 편하다”는 말에 “결혼하면 내가 엄마 전화기를 신경이나 쓸 수 있겠느냐”며 대들었다는 것이다. 나 키우느라 못 사본 것, 못 해본 것을 이제라도 해드리고 싶은 딸들의 마음이다.
결국 내 고집에 우리 부모님은 패키지 여행을 포기했다. 비행기 표와 호텔을 예약하고 보니 해가 진 낯선 도시에서 호텔을 찾아 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공항철도 탈 돈의 4배나 되는 호텔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다. 내가 갔던 레스토랑 사진을 보여드리며 언제로 예약하면 좋을지 여쭤 보니 “무슨 음식인지 잘 모르겠고, 영어 메뉴판도 번거롭다”며 불편하신 기색이다. 아차 싶었다.
어릴 적 읽었던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도시에 사는 효자가, 시골 마을에 더 대단한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효를 배우러 찾아간다. 그런데 이 ‘시골 효자’가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안마에 발까지 씻어주는 게 아닌가. ‘도시 효자’가 어이가 없어 너무 하는 것 아니냐 따져 물었다. 시골 효자 왈 “ 제가 무슨 효자겠습니까. 딱 하나 해드리는 일은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도시 효자는 무릎을 치며 깨달음을 얻어 진정한 효자가 됐다는 이야기다.
나도 뒤늦게 깨달았다. 억지로 최신 전자기기를 쥐어 드리고, 일류 레스토랑에 데려다 드리는 게 부모님께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또 하나, 부모님이 패키지로 가신다고 할 때 “그것도 괜찮네요. 재밌겠네요”하는 것이 내가 편한 방법이라는 것도. 다시 패키지 여행으로 바꾸면 이 또한 불효일까.
이현 JTBC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