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매우 높다. 이러한 높은 정치적 불만은 폐쇄적인 정당 정치와 관련돼 있다. 정당은 여전히 영남·호남의 지역주의에 의존해 있고, 그런 구조 속에서 정치인들은 기득권에 안주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쟁’이라고 하지만 사실 영남이나 호남에서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지역은 선택의 대안이 없는 ‘일당지배체제’다. 삼성이 기술 혁신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애플뿐만 아니라 샤오미 등 새로운 경쟁자로부터의 도전 때문인 것처럼 정치의 세계에서도 도전·경쟁 없이는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정치가 정체된 것은 지역주의의 높은 벽으로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막고, 기존 정당만의 독과점구조를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정개특위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번에는 ‘열린 정치’로의 변화 가능성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하라는 권고안을 냈다. 그런데 선관위 안은 의원 정수는 그대로 두고 대신 지역구 의원을 축소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지역구 축소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 규모가 비슷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의원 수는 결코 많지 않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존재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나라 역대 선거에서 국회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유권자 수에 대해 살펴봤다. 1948년 제헌국회 때 국회의원 수는 200명이었는데 당시 유권자 수가 784만 명이었다. 의원 한 명이 평균 3만9000명을 대표했다. 5·16 쿠데타 이후의 첫 국회의원 선거였던 63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 수는 1334만 명이었고, 의원 정수는 175명이었다. 당시 의원 한 명은 7만6252명을 대표했다.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이 규모가 유지됐다. 유신 전 마지막 선거였던 71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한 명은 7만6520명을 대표했다. 전두환 정권하의 첫 선거였던 81년 총선에서도 의원 한 명은 평균 7만6429명을 대표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첫 선거인 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유권자 수는 8만7619명으로 이전에 비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유권자 수는 무려 13만3938명이었다. 오늘날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유권자의 규모는 제헌국회 때보다 세 배 이상 많고, 민주화 이전보다도 두 배나 많다. 세상은 더 다양해지고 이해관계도 더 복잡해졌지만 국회의원이 대표해야 할 유권자 수는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이다.
‘국회의원을 100명 줄이겠다’는 대선 공약이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주장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폐쇄적인 지역주의 정당 정치를 뛰어넘고 진정한 정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병석 정개특위 위원장은 ‘대한민국 100년의 정치 방향을 정하는 주춧돌을 놓는 중대한 임무’라고 정개특위에 의미를 부여했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나눠 먹기가 아니라 ‘100년 주춧돌’이라는 역사의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혁신적 제도 변화를 기대해 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 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