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사고 헬기를 손전등으로 착륙 유도했다니 …

중앙일보

입력 2015.03.1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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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환자를 위해 출동한 해경 헬기가 전남 신안군 가거도 앞 바다에 추락해 대원 4명이 사망·실종됐다. 사고 헬기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 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출동해 인명을 구조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기장 최승호(52) 경위와 부기장 백동흠(46) 경위는 해군 출신으로 경력 20여 년의 베테랑이었다. 정비사 박근수(29) 경장은 올해 말 결혼할 예정인 예비 신랑이고 임용된 지 1년이 안 된 장용훈(29) 순경은 지난해 2월 아들을 낳았다.

 이들이 신고를 받을 당시 현장 기상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해가 진 데다 가거도엔 짙은 해무(海霧)가 끼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응급환자 수송이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날아가 착륙을 시도한 것이다. 소방헬기도 이날 신고를 받았으나 기상 불안정 때문에 출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거도는 우리나라 서남단 섬으로 연중 맑은 날이 7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태풍이 가장 먼저 지나가는 곳이라 대한민국의 ‘핫코너’로 불린다. 하지만 헬기 이착륙 시설은 물론 유도등 장치도 없다. 시계가 좋은 낮엔 별 문제가 없으나 밤엔 조종사들이 불빛 없는 방파제에 곡예나 다름 없는 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이번에도 주민들이 손전등으로 착륙을 유도했으나 안개로 잘 보이지 않자 헬기가 선회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거도는 목포에서 145㎞나 떨어져 그동안 전남도가 낙도지역의 응급환자를 위해 운항하는 ‘닥터헬기’도 지원되지 않았다. 또 쾌속선으로 4시간30분이나 걸리는 데다 기상 악화로 자주 결항해 응급환자들은 해경·소방 헬기를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안전 장치도 없이 해경과 소방헬기 대원들을 인명 구조에 투입하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을 부를 뿐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실종자 수색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꼬리를 무는 헬기 사고의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남도는 그제 뒤늦게 10억원을 들여 헬기 착륙장 시설을 확충하고 가거도까지 닥터헬기를 운항하겠다고 밝혔다. 예전부터 이에 대한 민원이 있었던 만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또 하나의 뒷북 행정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