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가장 논쟁적 여성으로 꼽히는 리인허(李銀河·63)에 대한 설명이다. 그가 지난해 12월 블로그에서 남편 장훙샤(張紅霞)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공개하기 전만 해도 그는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교수’ 혹은 ‘중국의 성 소수자 및 여성 권익 운동가’로 알려졌다. 그러다 ‘리 교수의 남편은 실제로는 여성이며 리 교수도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돌자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남편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전환한 성 소수자임을 밝히고 나섰다. 그는 “나는 동성애를 옹호한다”며 “하지만 나 자신은 여성의 몸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이성애자가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이성애자’라는 사실을 얘기하는 거다”고 설명했다.
[세계 속으로] 중국 성 소수자 운동가 리인허
'중국 21세기 이끌 12인'에 뽑힌 학자
성 정체성 상담하다 사랑 … 99년 결혼
"남편은 성 소수자" 작년 말 폭탄선언
NYT "자유분방한 성 개념 선구자"
인민일보 "동성애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중국 주류에서 벗어난 발언을 해왔다. 그의 베스트셀러 저서 『중국 여성의 성과 사랑』 『성 학대광의 반(反)문화』 등을 통해 개방적 성생활을 찬성해 왔다. 책들에는 “원 나이트 스탠드는 문제될 게 없다” “포르노는 범죄가 아니다” “가학·피학성 성애가 뭐가 나쁜가” 등 중국 사회에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그는 중국 당국의 보수적 성 정책에도 반대해 왔다. 중국 정부가 2010년 난징(南京)의 한 클럽을 급습해 22명을 음란죄 명목으로 체포하자 “지금이 중세 시대인 줄 아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를 의미하는 LGBT 권리의 수호자로 목소리를 내왔다. 신화통신 영문판은 2005년 그의 주장에 대해 “전위적”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중국 인기배우 쑨하이잉(孫海英)·뤼리핑(呂麗萍) 부부가 2007년 “동성애는 반인륜 범죄”라고 말하자 “그런 발언이야말로 잔인하고 무지한 것”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신화통신·뉴욕타임스(NYT) 등 중국 안팎의 매체들이 리 교수를 “자유분방한 성 개념의 선구자”라고 칭한 배경이다.
리 교수의 주장에 모든 중국인이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며 그의 책을 출판하길 꺼리는 출판사도 많다. 그러나 그의 동조자들이 나오는 현상 자체는 성 소수자에게 마음을 여는 중국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리 교수도 변화 속도를 체감하고 있다. 그는 NYT에 “집단 음란죄로 체포되면 최고 5년형까지 처해지는 법이 현존하는 중국은 성 문제에서 여전히 보수적”이라며 “중국의 성에 대한 인식은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리 교수가 주목받는 건 성 소수자라는 것 이외에 두 사람의 사회적 지위 차이에도 기인한다. 장훙샤는 택시 운전기사로 그의 두 번째 남편이다. 리 교수의 첫 남편인 유명 작가 왕샤오보(王小波)는 97년 작고했다. 장은 성 정체성을 고민하다 리 교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 과정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이 남성이라는 걸 깨닫고 성 전환을 결심했다. 둘은 99년 결혼한 뒤 아들을 한 명 입양했다.
NYT는 베이징 아파트에서 이들 부부를 인터뷰한 뒤 “남편은 활력이 넘치고 저돌적이었고 리 교수는 차분한 모습이었다”며 “서로를 깊게 신뢰하는 듯했다”고 전했다. 장은 “우리 둘을 맺어준 건 하늘의 뜻”이라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리 교수는 블로그에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사랑은 단순하다. 사회적 지위나 나이, 성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고 썼다.
[S BOX] 마윈도 동성애 커플 응원
중국은 1997년까지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했다. 중국 정부는 이 법이 폐지된 후에도 2011년까지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했다. 이런 중국에서 성 소수자를 의미하는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권익 운동은 걸음마 단계다. LGBT 관련 단체는 시민단체로 등록할 수 없다.
그러나 LGBT 운동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약 6000명의 성 소수자가 동성애 차별 철폐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을 주도한 데이비드 리(35)는 “대부분 중국인은 LGBT를 병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도 자연스러운 인간임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변화는 더디지만 진행 중이다. 지난해 베이징에선 LGBT의 상징인 ‘무지개(다양한 색깔처럼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자는 의미)’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집회가 열려 CNN·허핑턴포스트 등 외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은 지난달 밸런타인데이에 성 소수자 커플 10쌍을 선발해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미국·캐나다·프랑스·네덜란드 등으로 여행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BBC는 이를 두고 “사회적 압박을 견뎌야 하는 성 소수자들에게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