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2월 백선엽 대령은 사형 위기에 처해 있던 박정희 소령을 만났다. 박 소령은 그에게 “한번 살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백선엽 장군은 회고록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백선엽 전방위 구명 설득 … 김창룡도 신원보증 해줘
백선엽 대령은 박정희 소령이 중형을 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봤다. 군부 내 남로당 조직책이라고는 했지만 다른 군인을 포섭하는 활동을 하진 않았다. 또 붙잡힌 뒤 자신이 아는 군대 내 남로당 조직을 수사팀에 알려줬다. 백 대령은 미군의 동의와 이응준 총참모장의 재가를 얻어 박정희의 형 집행정지 허락을 받아냈다. 백선엽 대령, 김안일 방첩과장, 김창룡 대위(1연대 정보주임) 세 사람의 보증을 받고 박정희 소령은 2심에서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백선엽 장군은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에 대해 이렇게 해석한다. “그때 좌익이라는 것은 유행처럼 번지던 사조이기도 했다. 박정희 소령은 남로당의 포섭에 걸려든 경우이지만 진정한 공산주의자라고는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애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