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무능한 남편보다 소가 낫다" … 더 세진 북녀의 힘

중앙일보

입력 2015.03.03 00:57

수정 2015.03.0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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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보통강구역에 있는 미래상점의 여성 점원이 고객들에게 양말을 팔고 있다. 북한에선 최근 여성의 경제활동이 예전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에서 여성이 시장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장마당이 확대되고 시장경제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가운데 그 새로운 역할 공간을 여성이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점점 기를 펴고 살고 있지만 남성은 기죽어 삽니다. 직장에 나가더라도 자재가 없어 도로공사와 같은 사회부역활동에 동원되기 일쑤이고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범죄자 교화소로 알려진 단련대에 끌려가 일하기도 합니다. 북한의 국영기업 550개 가운데 50개 정도만 운영되는 데서도 알 수 있지요.

 여전히 여성이 남편에게 의존하는 고위직 간부들의 가정을 제외하곤 웬만한 가정에선 돈을 여성이 벌고 있으니 집안에서 부부간의 역할도 바뀌고 있습니다. ‘남존여비’ ‘남편공대(男便恭待)’…. 이제 흘러간 유행가입니다.

장마당 등 시장경제 여성이 주역
일할 곳 없는 남자들 점점 기죽어
뇌물 생기는 권력기관 일꾼 인기
경제문제로 갈라서는 가정 늘어

 여성이 장사로 가족생계를 책임지면서 남편이 아내 대신 집안일을 도와주는 경향까지 생겼습니다. 최고의 신랑감은 물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내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남자를 꼽는다고 합니다.

 남성 쪽에서도 생활력이 강한 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남편의 외조’가 행복한 가정의 필수요건이 돼 가고 있다니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에선 여성 전투기 조종사도 등장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8일 이들의 비행훈련을 참관했다. [중앙포토]
 북한 남성이 기를 펴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북한에서 남성은 고급중학교(한국의 고교)를 졸업하는 18세부터 대부분 10년간 군대에서 복무해야 합니다. 여성이 먼저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거죠. 결혼할 시기가 되면 남녀 간의 사회적 경험에 자연스럽게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은 생계활동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반면 남성은 군대 관련 활동밖에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생활력에서 여성보다 떨어집니다.


 시장경제가 스며든 장마당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은 만 50세 이상의 기혼여성에게 주어집니다. 기혼여성 중엔 나이를 속이거나 뇌물을 주고 장마당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요. 북한이 기혼여성에게만 장마당을 허용하는 것은 비공식경제 부문에서 남성보다 덜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여성은 장마당 이외에도 밀수·무역·신고원 등 다양한 분야의 시장경제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여성이 돈을 벌다 보니 가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여성이 남편의 경제적 무능함을 탓하면서 이혼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말까지 생겼답니다. “남편에게 해주는 것을 소에게 해주면 소가 남편보다 더 많이 벌어다 준다”는.

 돈은 이미 북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됐습니다. 배급제가 거의 실종되면서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황금 제일주의’가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배급이 중단되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서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돈을 주고 사는 상황이 됐으니 돈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북한 여성이 가장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남성은 물론 당·군·보위부·검찰소 등의 권력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권력기관에 있으면 뇌물을 받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인식에서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대학을 선택하는 데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엔 김일성종합대학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평양외국어대학이 가장 가고 싶은 대학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졸업 이후 외국에 나가 외화벌이를 할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이지요.

 김은주 소장은 “북한 여성들은 북한 체제를 옹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식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경제활동에 억척같이 뛰어들고 있다”며 “어찌 보면 1960~70년대 우리 어머니 세대의 삶과 모습이 똑같다”고 설명합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