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 문양과 색깔이 지금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은 국민 성금으로 세운 기념비적 공간이다. 1987년 8월15일 개관할 때 모두 945억원이 들어갔는데, 이 중에서 약 500억원이 성금으로 채워졌다. 방문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개관일부터 지난 15일까지 누적 방문객은 정확히 4645만6302명이었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의 의미를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정확히 어떤 유물이 있는지, 그 유물에 어떤 뜻이 담겼는지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독립기념관에는 모두 9만 점이 넘는 유물과 자료가 있으며, 그 중에서 약 2만 점이 전시되고 있다. 3.1절을 앞두고 김도형(54) 독립기념관 국외사적지팀장과 함께 독립기념관을 꼼꼼히 돌아봤다.
민족대표 33인과 출판법 위반
천안 독립기념관 꼼꼼 관람기
제4전시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자료가 ‘3.1운동 최초의 재판 기록집’이었다. 1919년 3월1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손병희·한용운 등 민족대표 33인에 관한 재판집으로, ‘내란죄’라고 죄목이 크게 적혀 있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조각상.
일제가 적용한 혐의가 뜻밖이었다. 익히 알려졌듯이 1919년 3월1일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3.1운동이 시작됐다. 그날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약 200만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런데 겨우 치안방해죄와 출판법 위반이라니.
“민족대표에게 내란죄를 적용하면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다시 일어날까 봐 걱정했던 것이지요. 3.1운동의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하기 위한 일제의 고육지책이었던 셈입니다.”
재판집에는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한 47명의 사건기록이 있었는데, 47명 중 11명이나 무죄 선고를 받았다. 손병희·한용운 등 주도자 8명도 3년 징역형이 최고 형량이었다. 혐의 자체가 무겁지 않으니 처벌도 무거울 수 없었다.
이를 보여주는 재판기록집.
독립기념관에는 기미독립선언서를 하와이에서 번역·발행한 영문 독립선언서, 러시아 연해주 임시정부가 발표한 독립선언서인 ‘대한국민의회선언서’도 전시돼 있다.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가락
안중근(1879~1910) 의사를 상징하는 사진이 있다. 손가락 하나가 짧은 손도장 사진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안중근 의사 하면 손가락 하나가 잘린 손도장 사진을 떠올린다.
독립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의 단지(斷指), 다시 말해 잘린 손가락 사진도 전시돼 있다. 안 의사는 독립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왼손 약지를 자르고 ‘대한독립’ 혈서를 썼다. 그 잘려나간 손가락만 찍은 사진이 엽서로 제작됐다. 가로 9㎝ 세로 11㎝이니까 손바닥만 하다. 잘린 손가락 사진이 있는 엽서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권총 사진도 있다. 안 의사의 의거 소식을 들은 미국의 애국지사가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엽서라고 한다.
상해 임시정부(임정)의 활동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임정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일제와 실제로 전쟁을 치렀고, 독일 나치 정권에도 선전포고했다.
상해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8일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이틀 뒤인 10일 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무부장 명의로 즉각 일본을 향한 선전포고문을 발표했다. 1945년 2월28일에는 ‘세계의 화평과 안전을 촉진키 위하여 덕국(德國) 희특륵(希特勒) 정부를 향하여 선전을 포고한다“고 공표했다. ‘덕국’은 독일을 의미한다. 독일 패망(1945년 5월8일)을 2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김도형 팀장이 당시 정세를 설명했다.
“1945년 2월7일 얄타회담 결과, 3월1일 이전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국가에 한해 그해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연합국 회의 참가자격이 주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해임시정부가 취한 조치였습니다.”
임정의 군대 조직이었던 광복군은 영국군과 합동으로 인도와 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연합국은 끝내 우리나라에 승전국 지위를 주지 않았다. 일제가 물러나자마자 미군이 상륙한 배경이다. 김 팀장이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광복은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한 우리 국민이 수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이뤄낸 소중한 역사입니다.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글=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