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는 “당초 1~2년만 쉴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며 “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성우가 돼 정신없이 살았다. 해외생활이 좀 길었지만 힐링의 시간이었고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에도 한국성우협회 회원 자격을 계속 유지했다. 언젠가 복귀하려는 생각에서였다”고 덧붙였다.
12년 만에 귀국한 성우 최덕희씨
유학생 아들 따라가 캐나다 생활
꼬맹이팬 어른 됐어도 열광 여전
"어릴 적 소중한 추억 지켜줘야죠"
최씨는 가장 힘든 작품을 텔레토비로 꼽았다. 제작사인 영국 BBC는 목소리 샘플로 오디션을 본 뒤 한국 성우들을 캐스팅했다. 나나 역할을 따낸 최씨는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 기대했는데, 정작 대사 같은 대사가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나’라고만 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아기 목소리는 웃는 표정 없이는 안 나온다. 그래서 오래 녹음하다 보면 나중엔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라고 기억했다.
지난해 11월 최씨 팬클럽인 ‘덕희다솜’에서 토크콘서트를 열어 잠시 귀국한 그를 초대했다. 90년대 꼬맹이였던 팬들은 이제 어른이 됐다. 그는 “팬들이 10년 넘게 떠난 나를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고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며 “그들은 나를 통해 자신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몰랐는데, 그걸 깨닫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고 했다. 그래서 “예전엔 성우가 직업에 불과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내 연기가 아이들에겐 평생 남는 추억이 된다고 생각하니 대본 한 페이지를 그냥 못 넘긴다”고 했다. 그리고 “아플까봐 걱정해주고, 늘 응원해주는 팬들이 어쩔 땐 아들보다 훨씬 더 듬직하다”며 웃었다.
돌아오니 작업 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성우들이 더빙하던 KBS 명화극장은 폐지됐고, 수십 개가 넘던 라디오 드라마는 이제 10개가 채 안 된다. 성우들의 활동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씨는 “사람들이 어릴 때 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성우 목소리 덕분”이라며 “목소리 연기의 전문성이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우들이 대중들에게 더 친숙히 다가가려고 노력 중”이라며 “나도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글=이철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