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유대 창업마피아’ - 무섭도록 치밀한 그들만의 단결력

중앙일보

입력 2015.02.21 00:01

수정 2015.03.0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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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페이팔 마피아’ 넘어 세계 창업세계 뒤흔드는 유대인 네트워크 분석

‘창업만이 살 길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업에서 찾자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많은 청년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 이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창업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집단은 유대인이다. 이들의 창업 생태계에서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실리콘밸리의 창업네트워크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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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구글·페이스북은 모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났다. 세계의 창업 허브인 실리콘밸리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기업들이 수없이 탄생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미래의 주커 버그를 꿈꾸며 창업에 도전한다. 투자자들은 이 가운데 될성부른 싹을 찾아내 투자한다. 이곳에선 실패도 성공을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성공한 창업회사들은 거대 기업에 인수되거나 나스닥에 상장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억만장자가 된 창업가들은 투자자로 변신한다. 새로운 창업 후배들에게 투자하거나 자신이 다시 새로운 창업가가 된다. 이렇게 끝없는 창업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다.


이런 실리콘밸리는 유대인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창업 생태계의 핵심이다. 페이팔·구글·페이스북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유대인이 창업한 회사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왜 창업 생태계의 주인공 대부분이 유대인일까? 그들의 공통적 특징은 뭘까? 그들의 장단점은? 새로운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가꾸어 나가야 할 우리에게 절실한 질문이다.

미국 인구의 2% 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실리콘밸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창의력 덕분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그들이 지켜온 관습, 곧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 유대교적 종교 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 시절부터 준수해온 유대인 커뮤니티의 수칙으로부터 기인한 단결력 덕도 크다. 역사적으로 유대인 사회는 툭하면 박해를 받았다.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 도우며 단결해야 했다. 이런 원칙이 오늘날 실리콘밸리에서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독특한 민족이다. 그들은 기원전 600년경 나라를 잃고 방랑하는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디아스포라를 이뤄 살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동질성과 민족혼을 잃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바로 그들의 신앙심과 단결력 덕분이다. “너희는 모두 한 형제다. 서로 도우라”라는 야훼의 말씀을 오늘날까지 굳건히 지키는 게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서로를 철저히 도와 상권을 장악하고 무역을 발전시켰다. 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 늘 경제가 발전했다. 역사적으로 상업, 무역과 금융업에서 그랬듯, 오늘날 지식산업계에서도 그들은 창의력과 단결력으로 시장을 제패하고 있다. 유대인 창업기업을 보면 창업 생태계의 유대인들끼리 똘똘 뭉쳐 성공시킨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밀어주고 당겨주는 그들의 단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대인 중심의 실리콘밸리 창업 생태계

그들은 중세부터 창업자들을 위한 ‘무이자대출협회’를 운영해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망해도 3번까지는 밀어준다는 점이다. 확률적으로 창업자들이 일반적으로 성공하는 횟수는 평균 2.6회째다. 두 번의 실패를 겪어보아야 다음 번 3번째 창업에서 성공한다는 얘기다. 한 번 망하면 곧 신용불량자가 되는 한국 창업자에게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이런 대출제도조차 그리 잘 이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부분 투자를 받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대인 창업가들이 투자 받는 확률은 97%다. 한국 창업가들이 투자 받는 확률은 1.5%에 불과하다.

유대인들은 물질적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창업가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인맥을 붙여주고 그들의 지식을 나누어 준다. 이스라엘 창업회사들이 나스닥에 상장한 숫자가 전 유럽 국가들의 창업회사들이 나스닥에 상장한 수보다 더 많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리콘밸리 유대인들은 같은 동족이라면 일단 물불 가리지 않고 지원한다. 우선 유대계 창업가를 해당 콘퍼런스에 참석시켜 필요한 인맥을 연결시켜 준다. 여기에는 당연히 엔젤 투자가들과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 네트워크도 소개한다. 물론 나중에는 M&A와 상장 전문가도 연결시켜 준다.

유대인 창업가가 투자 받을 확률 97%

유대인의 창업 이야기에서 늘 등장하는 단어가 ‘페이팔 마피아’다. 혁신적인 e메일 결제서비스 ‘페이팔’은 창업 초기 유대인 케빈 하츠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그 뒤 빠르게 성장해 2년 만에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같은 해 이를 눈여겨본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가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베이 역시 줄곧 유대인들이 경영해왔다. 페이팔을 함께 만든 유대인들, 엘론 머스크, 피터 틸과 맥스 레브친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은 페이팔을 판 뒤에도 끊임없이 다시 창업하고, 서로 돕고 투자했다. 끈끈한 결속력은 마치 마피아를 닮았다. 그래서 이들을 ‘페이팔 마피아’라 부른다. 이후 페이팔 마피아들이 창업하거나 투자한 기업이 유튜브, 전기자동차 테슬라모터스, 2011년에 상장한 페이스북 기반 게임회사 징가와 링크드인, 2012년에 상장한 옐프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야머 등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창업 네트워크는 페이팔을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하다. 그래서 ‘창업마피아’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앞으로 연재할 '유대 창업마피아’는 실리콘밸리 핵심 유대인을 중심으로 유대인 창업세계의 상호협력 관계를 살펴본다. 먼저 페이팔 마피아를 중심으로 그들로부터 파생된 기업들과 그 과정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 한다. 무섭도록 치밀한 유대인의 창업세계를….

글=홍익희 배재대 교수. KOTRA 근무 32년 가운데 18년을 뉴욕· 밀라노·마드리드 등 해외에서 보내며 유대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유대인들의 경제사적 궤적을 추적한 등을 썼으며 최근에 , , 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