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배우가 어느 순간 눈부시게 성장한 것을 확인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못하는 연기는 아니지만 명연이라 상찬하기엔 뭔가 부족했던 이가 어느날 능수능란하게 자기 캐릭터를 갖고 노는 것을 보는 즐거움. 지금 MBC ‘킬미 힐미’의 팔색조 다중인격 연기로 주목받는 지성(38)이 딱 그런 경우다.
인터넷에는 “교과서 같은 연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놀랍다” “유부남 배우에게 이렇게 빠질 줄이야”라는 팬들의 찬사가 이어진다. 가히 지성의 재발견이다. 비슷한 소재에 초특급 스타 현빈을 내세운 동시간대 SBS ‘하이드 지킬, 나’를 가뿐히 물리쳤다.
대중문화 리포트
‘비밀’의 재벌 2세 조민혁은 ‘킬미 힐미’의 신세기와 닮은 구석이 많다. 센 척, 악한 척 하지만 사실은 여리고 상처투성이다. 조민혁이 집착남에서 순정남으로 변해가듯, 신세기 역시 악마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로 바뀌어 간다. 그 변화를 살리는 연기의 디테일이 포인트다. 가령 인터넷에 떠도는 ‘지성 매너손’이란 영상을 보면, 신세기가 오리진(황정음)을 강제로 차에 태울 때 오리진의 머리에 손을 얹어 차문에 부딪히지 않게 한다. ‘보스를 지켜라’ ‘비밀’에서도 똑같이 나왔던 장면이다. 거칠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남자를 표현하는, 지성표 디테일 연기다.
2013년 7년간 사귄 탤런트 이보영과 결혼한 지성은 조만간 아이 아빠가 된다. 이보영은 SBS ‘힐링캠프’에서 “진지하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 매사 FM스타일이어서 처음에는 별로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튀지 않고 차곡차곡 밟아온 것이 오늘 그의 자산이 됐음은 틀림없다. 페이스북 드라마비평팀 ‘드라마의 모든것’ 멤버들도 ‘철저한 캐릭터 연구와 노력, 성실함으로 승부한 결과’라는 데 입을 모았다. “지금껏 다져온 연기의 정점”(김지연 PD), “뒤늦게 터진 로코(로맨틱 코미디) 복권”(이지창 작가), “연출의 아쉬움을 채우는 연기”(지혜원 평론가), “몇 장면은 한국드라마의 명장면으로 남을 것”(홍석경 서울대 교수)이란 평을 내놨다.
양성희 문화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