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삼성그룹의 특별 사내방송 4부작의 마지막 장면이다. 지난해는 삼성과 한국 경제에 시련의 해였다. 미국(애플)·중국(샤오미)에 낀 채 부대꼈다. 위기의 삼성이 25만여 직원 앞에서 내놓은 해법은 ‘다시, 기업가 정신’이었다. 기껏 기업가 정신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새 이불 빨고 빨아 쓰던 이불처럼 만든 역발상 … ‘명품 잠자리’ 전국에 소문
시장 상인의 고객 감동 납품
‘구름에’ 한옥리조트 명성 얻어
반년 새 관광객 5000명 늘어
길은 있다. 본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기업가 정신을 창업·경영자 등 소수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것(58.6%)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경북 안동에선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기업가 정신이 새바람을 일으켰다.
씨는 대기업이 뿌렸다. SK행복나눔재단은 지난해 7월 고택 리조트 ‘구름에’를 열었다. 하룻밤에 35만원의 방 값에도 예약률이 70%가 넘는다. 내로라하는 리조트의 평균 예약률은 30% 수준이다. 고택의 희소성이 사람을 한 번은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오게 한 건 잠자리의 힘이 컸다. 아침마다 숙박객들은 “너무 잘 잤다. 이불을 살 수 없느냐”고 직원을 졸랐다. 결국 이불을 따로 팔기로 했다.
화제의 이불은 안동 옥야동 시장에서 35년간 이불집 ‘행복수예’를 하는 최순녀(61·여)씨의 기업가 정신에서 나왔다. 최씨는 200채의 이불을 주문받고 손빨래부터 했다. 밤새 빨고 또 빨아 새 이불 천을 마치 헌 이불처럼 부들부들하게 만들었다.
윤기 나는 새 이불을 공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계속 써 온 듯한 편안한 이불을 만든 것이다. 최씨는 “손님의 마음결을 읽으려 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시장 상인은 거창한 ‘고객 중심 경영’을 이렇게 풀어내고 있었다. 최씨는 “진짜배기를 내놔야 손님이 돈을 써도 행복할 수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떡집을 하는 안정희(50)씨는 수없이 퇴짜를 맞은 끝에 구름에의 아침 별미로 유명해진 ‘구름떡’을 만들었다. 골동품점을 하는 임동걸씨는 고택 곳곳을 수리하며 전문 건축가가 놓친 2%를 채웠다.
필부필부의 기업가 정신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안동은 고령화로 활력이 줄고, 관광객도 정체했다. 그런데 구름에가 문을 연 뒤 최근 6개월간 관광객이 5000여 명 늘어났다. 상인들과 함께 작은 성공을 경험한 안동시는 구름에 옆 터를 개발하기로 했다. 100억원을 들여 건물을 만들 테니 구름에에서 운영해 달라는 부탁이다. 김선경 SK행복나눔재단 이사는 “안동 상인의 도전과 발상 전환이 만들어 낸 결과”라며 “우리도 이불과 떡이 리조트를 살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60대 이불집 주인, 50대 떡집 주인이 만들어가는 새 미래는 이제 시작이다.
특별취재팀 뉴욕·런던=이상렬·고정애 특파원, 김영훈·함종선·손해용·김현예·박수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