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의원은 문재인 대표에게 탈당계를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인 이부영이 그 멍에를 내려놓고 떠난다”며 “좀 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면 했지만 능력과 식견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고 말했다. 지역위원장(서울 강동갑)직도 함께 반납한 그는 “향후엔 한일협정 재협상이나 일본 평화헌법 9조 노벨평화상 추천과 같은 동아시아 평화문제, 보다 넓은 의미의 남북문제 등 시민운동 쪽에서 힘을 보태며 살겠다”고 했다.
은퇴 선언한 이부영 상임고문
“또 의원하려고 … ” 얘기 듣기 싫어
‘일 평화헌법에 노벨상’ 힘 보탤 것
이 전 의원은 24년간의 정치역정 중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2004년 열린우리당 의장 때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독소조항을 없애는 방향으로 국가보안법 개정에 합의했으나 ‘개정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는 당 내 반발로 좌절됐을 때”라고 했다. “6을 얻고 4를 내주는 게 정치인데, 결과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는커녕 독소조항들은 그대로”라며 당시의 당내 강경파들을 비판했다. 또 “1994년 김일성 사망 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북한에 조문할 의사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상이군인들이 지구당을 부수고 날 죽이겠다고 하더라”며 “정치인생 중 가장 처연한 기억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97년 왜 김대중이 아닌 이회창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보다 이회창·조순(민주당 총재) 조합이 더 깨끗해 보이더라”고 말했다. 2003년 한나라당 탈당에 대해선 “2000년 남북 6·15 공동선언에 찬성했더니 한나라당에서 ‘당을 떠나라’고 하더라. 그래서 ‘떠나주마’라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서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