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은 필적으로 옮아갔다. 정씨의 눈에는 추가 유언장의 글씨가 다른 사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씨는 “유언장에 대해 감정을 맡겼는데 아버지가 쓴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감정 결과를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노인성 치매 5년 새 87% 증가
글씨체 감정 의뢰 2~3배로
법원끼리도 진위 판단 달라
“경증 때 유언장 미리 써둬야”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필체가 바뀌면서 관련 분쟁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문서감정사무소 등에 따르면 유언장 등에 대한 감정 의뢰가 급증했다. 서초동에서 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문서감정사는 “최근 들어 70대 이상 노인들이 썼다는 문서에 대한 필적 감정 의뢰가 2~3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문서감정사 김모(43)씨도 “3~4년 전에 비해 큰 폭으로 관련 의뢰가 늘어났다”며 “30~40년간 쓰던 필적이 변하니 가족 입장에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노인성 치매 진료 인원은 최근 5년간 87.2% 증가했다. 고령화에 따른 상속 분쟁 증가에 노인성 치매 환자 급증이 맞물리면서 관련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나덕렬(59)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환자의 글쓰기는 인지와 운동 두 가지 차원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인지 기능이 마비돼 ‘ㅚ’ 같은 이중모음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심한 경우 ‘ㅓ’로 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치매 말기로 갈수록 운동 능력도 떨어져 파킨슨병 환자처럼 글씨 사이즈가 작아지거나 글씨체가 심하게 떨리고 망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유언장 진위 등에 대한 분쟁이 생길 경우 문서 감정 이외에 다른 입증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유언장을 미리 써놓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립중앙치매센터 부센터장인 성수정(36)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원하는 분에게는 병세가 덜할 때 유언장과 요양원 가는 문제 등에 대해 의사표현을 해놓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삼화(53) 소민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법적으로는 미리 공증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자필 유언장을 남발하면 자칫 유언 전체의 효력이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