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25년이 지났다. 한국은 IT 대국이 됐고 1인당 국민소득도 세 배가 됐다. 그런데 한국 경제가 무럭무럭 성장해 경제대국으로 등극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한국인들에게 특유한 그 오기와 자신감은 옛날 얘기가 됐다. 침체 터널을 벗어나려 애쓰는 일본은 1억 명 중산층화를 뜻하는 ‘1억 총중류(總中流)’ 슬로건으로 불을 지피고 있고, 샤오캉(小康) 사회를 외치는 중국은 13억 인구를 생산 현장으로 부지런히 끌어들이고 있다. 혐한(嫌韓)·혐중(嫌中) 운동 덕분인지는 몰라도 일본인들은 과거에 비해 활기를 되찾은 분위기다. 중국의 생동력은 어디까지 뻗칠지 모를 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중국이 러시아 생산기지 됐는데
한국은 북방정책에 손 놓고 있어
유라시아 잇는 북방정책 기점은
극동의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남진정책의 기지에서
경제적 북진정책 입항 활용해야
중국은 이미 광활한 러시아 대륙에 생필품을 공급하는 생산기지로 변신했다. 국경도시는 러시아에 물품을 공급하는 중국 상인들이 가득했으며, 세관에는 중국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러시아인 보따리장수가 줄을 섰다. 유럽 정체성을 가진 러시아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러시아에는 공장과 기업이 빈약한데 어쩌랴. 국경 넘어 러시아는 한적했고 쓸쓸했다. 상점 물건들이 윤기를 잃었다. 모피를 두른 늘씬한 여인들과 코사크 기병 같은 남성들이 보였지만 그들이 어떤 생업을 가졌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마침 유가 하락으로 루블 화폐가치가 반 토막 난 탓도 있을 것이다. 국경도시 우수리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열차에서 목격했던 한국 기업은 삼성과 두산중공업, 딱 두 개였다. 모스크바에 진출한 제조업은 한국야쿠르트 외에 거의 없다. 중국이 러시아 생산기지로 발돋움하는 동안 한국은 북방정책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닦았던 길은 잡초만 무성한 맹지가 됐다.
실용적 접근을 하지 않았던 탓이다. 역대 정권은 북방정책을 정치적 현수막으로만 썼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했던 자원외교만 해도 그렇다. 부실 기업이 아니라 미국의 셰일가스전이나 카자흐스탄 광산을 통째로 사들였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공들이는 유라시아 철도와 하산·훈춘 산업지구 구상안도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유라시아 철도는 이미 그곳에 ‘존재한다’. 굳이 북한을 경유하지 않아도 9288㎞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대기하고 있다. 동해항에서 뱃길로 천 리만 가면 닿는다. 이미 가설된 철도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하산·훈춘 산업지구? 이건 꿈같은 얘기다.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한·중·러 삼국이 노리는 이익이 서로 부딪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인력과 생산시설을 장악하고, 태평양으로 진출할 항구를 확보한다. 북한을 끼운 채 말이다. 공장 노동을 싫어하는 러시아는 그저 관리 업무만 담당할 것이다. 한국은 생산기술을 제공한다? 글쎄, 블라디보스토크의 이점을 독점하려는 러시아가 그걸 용인할까?
유라시아를 잇는 북방정책의 기점은 하산·훈춘이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다. 극동의 수도인 그 도시는 외국 자본과 외국 기업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광활한 시베리아를 배후지로 품고 유럽까지 한국 상품을 공급하는 전진기지로 손색이 없다. 150년 전 러시아 남진정책의 기지였던 그 도시를 이제는 역으로 경제적 북진정책의 입항(入港)으로 활용하는 게 실리적 북방외교다. 20년 전 통일과 시장 개척에 관심이 많았던 고(故) 정주영 회장은 그곳에 호텔을 지었다. 사업 본능에서 나온 결단이었는데, 아직도 소소한 오퍼상들만 오갈 뿐이다. 블라디보스토크, 21세기 북방정책의 전진기지가 손짓하고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