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의 법치와 시민의식으로 이해되는 일인가. 파리 테러의 교훈으로 이제라도 테러방지법을 제정해 공권력의 적법 절차를 확보하자고 말하면, 권한 남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틀에 박힌 반대로 간단하게 배척될 것이다. 오히려 얼마 전 이슬람국가(IS)로 간 김모군에 대해 전교조 소속 정모 교사가 그것은 민중의 설움과 절망이 깊어져 발생한 것이라면서 "돌아오라”고 외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테러·경제 간첩·사이버 범죄 ?
처벌할 법 없어 무법으로 활개 쳐
우리의 공권력 손발 묶인 사이에
타국 공권력이 사이버 세계 장악
더욱 황당하게는 대권에도 도전한 문재인 의원이 성남시장을 사법 처리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선동을 엄호한다. 이 모두에 법치주의는 침묵한다. 내란 선동이 인정돼 징역 9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지하 혁명조직(RO) 사건에서 RO가 조직임을 인정하기 어렵고 음모는 무죄라고 해도 정치권은 법의 미진함을 개탄하지 않는다. 일부 공무원의 공개적인 반정부 투쟁, 해산이 결정된 정당원들의 재출마 거론 등은 우리의 법률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잘 알려준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법치주의는 신(神)의 통치도, 태양왕 같은 절대 권력의 통치도 부정하고 오직 동일한 신분의 동료들이 만든 객관적인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의 지배라는 그 당연한 논리로 국가와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 충분한 법률을 필요로 한다. 이에 프랑스·독일·미국의 국가 안보 관련법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인격 고양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하지만 국가 이성을 저해하는 표현은 법으로 엄히 단죄한다. 법치주의가 주관적 사고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한정 허용하는 면죄부가 아님을 파리 테러는 잘 알려줬다. 1789년 시민의 인권혁명으로 획득한 소중한 가치인 자유·평등·박애의 관용의 나라 프랑스가 너그러움을 잃어버려서가 아니다. 프랑스의 진정한 법치주의는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자유의 적에게 자유는 없다. 공동체 파괴자는 처벌하는 것이 정의다. 법이 없으면 빨리 만들어 단죄하라!”
국가와 사회를 지켜줄 법이 없는데 법치주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법의 부존재는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를 불법으로 만든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 운영에 대한 법률은 해방 이후 일본의 법을 개수해 엉성하게 만든 것이 전부다. 더욱이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에 따른 입법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따라서 테러, 경제 간첩, 사이버 내란과 외환, 전자 감시, 국기 문란 선동죄, 공무원 불충(不忠) 등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처벌할 법이 없으므로 자연법적으로는 유죄인 범죄가 무법으로 활개 치는 형국이다. 우리 공권력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있는 사이에 사이버 세계는 다른 나라의 공권력이 장악하고 있다.
평화를 지향할수록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처럼, 법치를 지향할수록 필요한 법을 제정하고 시민의식을 드높여야 할 것이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루소는 “법률 없이는 자유도 없다. 자유를 위해서는 법이 강제돼야 하고, 위반자에게는 형벌이 내려져야 한다. 법률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제정돼야 한다”고 설파했다. 진정한 법치주의는 필요한 법률이 있어야 성립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공권력을 불법이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법을 제정하지 않는 국회의 나태를 꾸짖는 것이 적법 절차의 정의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경찰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