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노트북을 열며] 아이들 위인전도 그렇지는 않다

중앙일보

입력 2015.02.05 00:03

수정 2015.02.0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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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아이들 책을 보다 보면 종종 놀란다. 수십 년 전 읽던 동화책들과 사뭇 달라서다. 내용은 그대로인데 책 뒤에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권선징악을 대표하는『콩쥐팥쥐』에서는 콩쥐가 계모와 팥쥐로부터 당하기만 할 때까지 친부인 아빠는 무엇을 했느냐고 되묻는다. 『성냥팔이 소녀』를 보자면, 한 소녀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갈 때까지 사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일깨워준다. 현상의 다면성을 짚어주자는 것인데, 이쯤이면 웬만한 대학 수업 수준이다.

 하지만 가장 혁신적인 건 위인전이다. ‘묻지마 신격화’의 틀을 버렸다. 가령 이순신 장군이 여섯 살 때부터 어려운 책을 줄줄 외웠다는 얘기 대신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없이 고민하던 한 인간이었음에 초점을 맞춘다. “지나치게 비범한 영웅의 일대기가 더 이상 아이들의 공감을 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예 요즘 출판계에선 위인전을 ‘인물전’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김연아·스티브 잡스·워런 버핏 등 현대적 인물들을 포함해 역사적 위인들을 친근하게 그려낸다. 책 속에서 안철수 의원은 ‘어릴 적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으로, 스티브 잡스는 ‘집중력이 뛰어났지만 그만큼 남을 배려하지 못했던 청년’으로 묘사하며 균형감을 잡는 것도 요즘 위인전의 특징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대해 연일 쏟아져 나오는 비판을 접하면서 달라진 아이들 책이 새삼 떠올랐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전래동화와 위인전조차 성숙해진 아이들의 시각을 맞추려 하는데, 저자인 MB는 왜 퇴임 후 첫 저서를 내면서 균형감각을 갖추지 못했느냐는 의문이 생겼다. 말이나 없었으면 모를까, “기억이 용탈돼 희미해지기 전 대통령과 참모들이 생각하고 일한 기록을 가급적 생생하게 남기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화자찬을 경계했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한 일들이 미화되거나 과장되어 기억될 위험이 있는 것들을 경계했다”는 얘기가 더욱 공허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을, 한 네티즌의 말마따나 모든 사안을 어찌 그처럼 ‘기-승-전-자화자찬’으로 일관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인지 말문이 막히기까지 하다. 지금도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선 되레 자랑으로, 국정조사를 계획 중인 자원외교에 대해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마무리하는 대목에선 한숨이 나온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었다. 무릇 회고록이란 한 개인과 그를 둘러싼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며 공적인 측면을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했다. 그것이 갑남을녀가 쏟아내는 자서전과 다른 점이다. 과거 대통령의 시간이었다. 6년에 걸쳐 집필하고, 각종 문서를 접목시켜 노벨문학상까지 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회고록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균형 감각을 갖추고, 그래서 독자에게 다양한 생각거리와 평가를 던져줄 수 있는 기록이면 족했다. 아이들 위인전도 그런 수준이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