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정부가 밝힌 통일 준비사업들은 대부분 북한과의 협력과 대화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남북 대화는 말만 무성할 뿐 재개되지 못하고 있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랭한 상태다. 서로 엇박자를 내며 기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광복 70주년 남북공동기념위원회는 과연 구성이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광복 70년 맞아 통일 준비 한창
하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랭
비방중단 합의 이행 재확인하고
흡수통일 포기 공식 선언도 필요
대화의지를 서로 확인하고도 여전히 대화가 성사되지 못하는 이유는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역지사지의 입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소프트한 협력 제안은 거부하고 정치·군사 이슈를 대화 의제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북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체제 대결 중단 요구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상대방 주장은 진정성이 없고 내 제안만을 수용하라면 대화는 성사되기 힘들다. 따라서 지금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상호 관심사항을 모두 협상 의제로 올려놓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은 박 대통령의 대북 제안을 받아들이고 우리 역시 북의 정치·군사적 의제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 재개의 여건 조성을 위해 한·미 군사훈련 일시 중단에 대해 우리가 열린 접근을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연례적인 군사훈련을 영구 중단이 아니라 한 해 중단한다고 해서 우리 국가 안위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1992년 북·미협상 진전에 따라 팀 스피릿 훈련을 일시 중단한 전례가 있다. 군사훈련 중단은 논의조차 불가하다는 입장은 사실 지나친 근본주의일 뿐이다.
전단 살포에 대해서도 전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 대결 중단과 흡수통일 반대라는 북한의 정치적 요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북이 전단 살포 문제를 이슈화하는 이유는 사실 전단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체제 대결 중단이라는 자신의 요구에 박근혜 정부가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는 입장이다. 남북은 지난해 고위급 접촉에서 상호 비방 중단을 합의한 바 있고 이에 대한 이행의지의 바로미터로 북은 전단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비방 중단 합의를 재확인하고 이행하겠다는 공식적 입장을 밝힌다면 전단 살포 논란은 상당 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통일 준비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것도 필요하다. 이미 노태우 정부 이후 우리 정부의 통일 방안은 평화공존에 의한 점진적 과정으로 공식화돼 있다. 흡수통일 반대를 표명한다고 해서 역사적 흐름이자 최종적 결과로서 흡수통일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흡수통일을 정부가 목표로 해야만 흡수통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북이 흡수통일 반대를 요구한다면 얼마든지 말로는 해줄 수 있어야 한다. 통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현실적인 통일정책임은 통독 과정에서 확인한 바 있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언급이 당시 최악의 남북관계에서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생뚱맞았는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 박 대통령의 통일 준비가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