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취재일기] 억울해도 책임은 박태환에게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5.01.29 00:15

수정 2015.01.29 00:23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수영 영웅이 약물 스캔들로 무너지고 있다. 2014 아시안게임 시상대에서 내려오는 박태환. [중앙포토]

김 식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박태환(26·인천시청)은 침묵했다. 그의 소속사 팀GMP는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지난 26일 내보낸 뒤 사무실 문을 걸어 잠갔다. 박태환의 법률 대리인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다. 보도자료는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했다. 어떤 성분에 대해 양성반응이 나왔는지 밝히지 않은 채 T병원의 권유로 주사를 맞았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결국 지난 27일 검찰 브리핑을 통해 박태환이 테스토스테론이 포함된 남성호르몬 주사(네비도)를 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앞서 박태환 측은 상해·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T병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T병원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약물 쇼크’의 본질은 아니다. 박태환은 지난해 7월 말 주사를 맞았고 도핑 테스트에 적발됐다는 사실을 지난해 10월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도핑 규정을 어긴 선수의 자격을 최대 4년간 박탈한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걸 입증해도 2년은 뛰지 못한다. 내년 리우 올림픽 출전이 어려워졌다. 책임을 병원으로 돌리는 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길이라고 박태환은 판단한 것 같다.

 “금지약물인지 몰랐다”는 의사의 진술은 충격적이다. 약품 포장지엔 테스토스테론이 명시돼 있다. 도핑 전문의가 아니라고 해도 WADA가 테스토스테론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말은 믿을 수 없다. T병원의 과실이 밝혀진다 해도 박태환은 징계를 피하기 어렵다. WADA에 따르면 금지약물에 대한 책임은 선수에게 있다. 세계적 수영스타인 박태환은 WADA가 항상 주목하는 선수다. 지난 10년간 수십 차례의 도핑 테스트를 받았다. 그가 안티에이징·재활치료 전문병원의 말만 믿고 네비도를 맞았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맞춰지지 않는 퍼즐이 남아 있지만 박태환은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박태환을 사랑했다.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수영장 하나 제공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 못지않은 성과를 냈지만 그만큼 지원해 주지 못해서 늘 미안했다. 2013년 박태환이 후원사를 찾지 못했을 때 국민은 7000여만원을 모았다. 지금 박태환을 보는 이들의 마음은 그래서 더 착잡하다.

 오래전부터 박태환은 대한수영연맹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났다. 네비도를 맞은 사실은 그의 개인 트레이너조차 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책임은 온전히 박태환이 져야 한다. 법정에서 병원과 싸울 게 아니라 국민 앞에 나서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게 ‘마린보이’를 10년 넘게 믿고 응원해준 팬들과 아름답게 이별하는 길이다.

김식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