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는 ‘봄 과일’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봄에 딸기 생산량이 가장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맛으로 따지자면 단연 ‘겨울 딸기’다. 봄보다 열매가 더 천천히 여물어 축적되는 양분이 많아서다. 농촌진흥청이 수확 시기별로 분류해 딸기 품질을 조사한 결과 겨울철 딸기의 평균 당도는 12.5브릭스로 봄철 딸기 평균 당도 10브릭스보다 2.5브릭스나 높았다. 그래서인지 1월이 되면 레스토랑이나 디저트 카페에서는 겨울 딸기로 만든 요리를 하나둘 내놓는다. 그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이맘때 먹기 딱 ‘적기’인, 이맘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겨울 딸기’ 요리들을 만나봤다.
‘딸기 피자’. 혹시 메뉴판을 잘못 본 건 아닌지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메뉴다. 피자 도우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딸기들.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딸기 과육이 입안에 퍼지며 상큼함이 감돈다. 몇 해 전부터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하나둘 내놓기 시작한 이 딸기 피자는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진 ‘겨울철 별미’다.
막걸리도 피자도 빨개졌네 … 겨울 딸기가 더 달콤하다
‘찹쌀떡~ 메밀묵~.’ 겨울밤이면 으레 밖에서 들려오던 추억의 소리다. 특히 달달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의 찹쌀떡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간식거리다.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딱 걸리게 만드는 하얀 찹쌀 고물에 진한 팥 앙금이 일품이다. 최근 서울 시내에는 ‘과일 찹쌀떡’ 집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한라봉·자몽·청포도·키위 등 안 들어가는 과일이 없지만 딸기가 들어간 찹쌀떡은 과일 찹쌀떡 집 주인들이 입을 모아 강력 추천하는 ‘요새 먹기 딱’인 찹쌀떡이다.
사실 과일이 들어간 찹쌀떡의 원조는 일본이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모찌 이야기’를 운영하는 김민수씨는 5년 전 일본에서 과일 찹쌀떡을 처음 맛봤다. 목욕을 하고 나오는데 목욕탕 바로 옆 리어카에서 과일이 들어간 찹쌀떡을 팔고 있었다. 주머니 속 잔돈을 털어 사먹어 보니 맛이 좋았다. 알고 보니 리어카 주인은 3대째 떡집을 운영하는 찹쌀떡 장인이었다. 김씨는 리어카 주인에게 3개월간 비법을 전수받아 3년 전 가게 문을 열었다. 1~2월 가장 반응이 좋은 건 역시 딸기 찹쌀떡이다. 김씨는 “여름에도 강원도 농장에서 딸기를 구입해 찹쌀떡을 만들지만 ‘겨울 딸기’ 찹쌀떡 맛은 절대 못 따라간다”고 말했다.
상큼한 딸기 셔벗을 깔고 딸기를 층층이 쌓아 생크림까지 올린 딸기 파르페도 매력적이다. 최근 딸기 파르페 트렌드는 먹다 질릴 정도로 딸기를 많이 올려주는 것.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 ‘카페 드 파리’의 ‘봉봉 시리즈’가 그렇다. 딸기·망고·체리봉봉 등 무엇을 시키든 풍성하게 과일을 올려주는데, 카페 주인이 특허 출원까지 한 메뉴다. 특히 딸기봉봉은 겨울철부터 딱 3월까지만 맛볼 수 있다.
주류(酒類) 업계에도 겨울 딸기는 빠지지 않는다. 술은 써서 못 마신다는 사람들도 ‘술술’ 넘길 수 있을 만큼 맛도 부드럽다. 홍익대 앞 이자카야인 ‘스가타모리’에서는 딸기 크림 생맥주를 판다. 아이스크림 맥주라고 불리는 ‘기린 이치방 프로즌 나마’의 포인트인 얼린 거품에 딸기를 갈아 넣었다. 그래서 거품이 분홍색이다. 맥주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딸기 향이 입 안에 잔잔하게 남는다.
생딸기와 막걸리의 궁합도 나쁘지 않다. 생딸기를 갈아 막걸리와 섞어 내오는 딸기 막걸리의 고운 빛깔은 ‘딸기우유’를 연상시킨다. 맛도 달콤하면서 술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수가 없는 건 아니니 술 약한 사람들이 계속 마시다가 저도 모르게 취해 버리는 ‘앉은뱅이 술’의 전형이다. 서울 노원역 인근 술집 ‘시오코’는 딸기와 얼음, 막걸리를 함께 갈아 슬러시처럼 즐기는 딸기 막걸리로 인기몰이 중이다.
호텔 로비 라운지 한가운데 마련된 초콜릿 분수, 그 아래 선반에는 제철 딸기들이 가득 쌓여 있다. 양옆으로는 딸기 케이크·마카롱·푸딩·샌드위치 등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돼 있다. 셰프가 즉석에서 딸기에 캐러멜 시럽과 브랜디를 섞은 ‘딸기 플람베’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은 지난 16일 딸기 뷔페를 시작한 이후 하루 평균 약 400㎏의 딸기를 소비하고 있다. 전남 담양 산지에서 직송한 ‘봉산 딸기’가 주재료다.
매년 겨울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호텔 딸기 뷔페들도 하나둘씩 문을 열고 있다. 1인당 평균 3만~5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름난 딸기 뷔페들은 예약 없이 입장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외에도 쉐라톤 서울 다큐브 시티 호텔이 지난 3일부터 딸기 디저트 뷔페 ‘올 어바웃 스트로베리’를 열었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도 1월 딸기를 이용한 ‘스트로베리 페스티벌’을 15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 딸기 뷔페를 찾은 김영주(27)씨는 “과일 중 딸기를 제일 좋아하는데 음식 종류도 많은 데다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어 앞으로도 이맘때쯤 되면 종종 방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